수구보수신문들이 연일 공영방송 보도·시사프로그램을 흔들고 있다.
어제(29일)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KBS ‘미디어포커스’를 거칠게 비난하더니 오늘은 조선일보가 KBS·MBC 9시뉴스와 MBC ‘PD수첩’을 공격하고 나섰다.
두 신문이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뻔한 레퍼토리를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핵심은 두 신문이 사설을 통해 KBS ‘청부사장’ 이병순 씨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최시중 씨, 나아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향해 ‘방송통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했다.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KBS, 미디어포커스 ‘편향과 악의’ 놔둘 건가 >,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 TV가 온 나라를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 >이다.
동아일보는 ‘미디어포커스’ 9월 6일과 27일 방송분 등을 언급하며 ‘미디어포커스’가 “주류신문 공격, 노(盧) 정부와 좌파 언론단체의 나팔수, 정 사장 지키기에 앞장섰다”고 음해했다. 그러면서 “미디어포커스 개편이 단지 시간대나 포맷을 바꾸는 정도라면 시청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미디어포커스의 편향과 악의(惡意)를 그대로 놓아두고선 공영방송의 공정성 구현은 공염불”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포커스’를 폐지하라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뜬다. 조선일보 사설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다룬 KBS·MBC 보도와 ‘PD수첩’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상 공영방송의 모든 시사교양프로그램을 겨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이 ‘방송 탓’이며, 그로 인해 나라가 ‘잿더미’가 됐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엔 남북문제, 반미, 식품안전, 종교갈등, 교육 등 앞으로도 방송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도록 불을 지를 수 있는 이슈가 한둘 아니”라며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미리 왜곡보도를 걸러낼 수 있는 방송사 내부의 여과(濾過)시스템과 함께 오보·과장·확대보도 등에 대해 사후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심의체제가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식으로 객관적 취재·보도 훈련을 받지 않은 PD들의 짜맞추기 보도 성향을 견제하려면 기자들과 공동으로 제작팀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탄핵방송 심의를 언론학회에 의뢰했던 것처럼 먼저 권위 있는 외부 기관에 광우병 왜곡보도 경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조사·분석하도록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것” 등을 제안했다.
이병순 씨가 KBS 사장 취임식에서 밝힌 내부 검열 방침을 독려하는 한편, 방통위와 정부 여당을 향해 방송심의체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이다. 그래야 통일, 외교, 교육 등 사회 현안에서 수구보수세력이 밀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권위있는 외부 기관’ 운운한 의도 역시 뻔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소수의 야당 추천 위원들이 있고, 이들은 지난 ‘PD수첩’ 심의 과정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의 일방적인 ‘중징계 몰이’에 반발한 바 있다. 조선일보로서는 합의제 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조차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구보수의 입맛에 딱 맞는 인사들에게 광우병 관련 보도 분석을 의뢰한 후, 이들이 내놓는 자료를 방송통제의 객관적 근거인 양 삼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정상 언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선·동아일보는 적어도 ‘언론’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권력을 향해 방송통제를 ‘조언’ 또는 ‘지시’하는 행태만큼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두 신문은 지난 10년 동안 걸핏하면 ‘언론자유’를 입에 올리며 신문시장에서의 불법 경품 살포까지 ‘언론자유’인 양 호도하지 않았는가?
조선·동아일보가 공영방송의 보도·시사교양 프로그램들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제대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매체들의 상호 비평은 적극 권장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공영방송의 보도와 프로그램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겠다는 비뚤어진 의도에 사로잡혀 객관적인 비평은커녕 색깔론 공세와 정략적 비난만을 일삼았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공영방송 보도가 ‘경찰의 폭력만 강조하고 시위대의 폭력은 가렸다’고 비난하지만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시민들은 조선일보 등이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은 축소하면서 극히 일부 시위대의 폭력만 부각했다‘,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누군가의 선동 탓으로 몰았다’는 등의 불만을 터뜨렸다.
대다수 시민의 평화시위를 왜곡하지 않은 공영방송의 보도가 어떻게든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려는 조선일보의 보도보다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이는 공영방송이 권위주의 시절의 권력 편향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기계적 균형’에서 나아가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조선일보 등은 이를 ‘편향’과 ‘악의’로 매도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방송사 경영진을 향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라고 독려하는 한편 권력을 향해 ‘효과적인 방송통제의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언론의 정도(正道)가 아님은 물론 ‘동종업계’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조선일보 등이 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공영방송을 흔들 여력이 있다면, 고달픈 서민들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일각이라도 더 고민하기 바란다. 그것이 조선일보가 살 길이다.
KBS 이병순 씨와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씨, 그리고 정부 여당에게도 당부한다. 조선일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기 바란다. 조선일보를 ‘이데올로그’로 따르는 한 이른바 ‘보수 세력’의 미래는 없다. ‘지는 해’를 따라가면 함께 몰락한다.
조선일보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지는 해’다. 조선일보가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부추겨 놓고 그 일을 변명하느라 오늘까지 진땀 흘리는 모습을 보라.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을 ‘성공’으로 이끌 역량이 없는 집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