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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전망IN

(비판 4) 교육, 문화, 계급 통합력의 문제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10. 18.

계급 불신을 교육한 민주노조운동

 

[민주노조운동 비판 ④] 교육, 문화, 계급 통합력의 문제

민주노조운동에서, 대의원대회 성사 같이 기본적인 조직 장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도력(?)의 부재를 지적하듯이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이 조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심각한 통합력 부재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의 이완, 더 정확하게는 통합 해소는 스스로의 발전 과정을 통해 선택한 피할 수 없는 결과다.

1.

교육 부재. 계급의식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에 대한 귀속 의식조차도 자연스레 주어지지는 않는다. 자본에 대한 감성적 반발이나 즉자적인 경제이익 추구를 노동조합의 대자적 지향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이외의 대안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나라 노동조합 중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교육시간을 쟁취하고 있는 노조는 20%를 겨우 넘고, 그나마 교육을 보장받고 있는 노조의 절반 가량이 연 10시간 미만이다.

조합원 교육을 교섭 대상으로 삼는 비율은 임금 인상의 1/20, 경영성과 배분의 1/3에 지나지 않고, 대기업노조라거나 산업노조라 해서 그 비율이 크게 높은 것도 아니다(이상 1998년~2003년 단체협약 분석). 조합원들은 회사나 교회의 교육, 또는 예비군훈련이나 민방위교육은 받지만 노조의 교육은 받지 못한다.

2.

   
  ▲  2005년민주노총새해맞이통일기행
 

문화 괴리와 문화 종속. 교육의 유예 또는 회피는 조합원의 의식과 문화를 노동조합 외부에 위탁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70년대까지는 기독교, 80년대부터는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다. 유럽에서도 그 두 운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곳에서는 정당이라는 필터를 통했던 데 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국 노동운동은 기독교 사회운동과 좌익적 대학생운동의 계급적 유약함에, 때로는 관념적 과격성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실리적 조합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양 편향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적 구성원인 조합원들이 보기에 “남조선은 반봉건 식민지”라거나 “혁명이 임박했다”는 관념은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한 쪽은 발기부전이고, 한 쪽은 만성발기다. 어느 쪽이나 불임이다.

요즘 조합원들은 그나마 자본주의적 합리성을 지닌 회사를 믿는다. 가장 활발하게 조합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금속산업연맹에서도 노조에 귀속감을 느끼는 조합원(22%)보다 노사 양 쪽에 귀속감을 느끼거나(35%), 양 쪽 모두에 귀속감을 느끼지 않는(28%) 조합원이 더 많다(금속산업연맹 2005년 설문조사).

3.

‘총파업’과 경험 학습. 2000년대 들어 민주노총은 최소 12회 이상, 매년 적어도 두 차례씩의 총연맹 차원 ‘총파업’을 벌였다. 이런 빈도는 유럽 대륙 전체에 버금가는 수준이고, 그 요구안 역시 노동시간단축, 민영화저지, 경제자유구역폐지, 비정규직철폐, 파병철회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총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은 언제나 10% 내외에 불과하고, ‘총파업’의 실질적 종료는 거의 예외 없이 대기업노조의 경제협상 지속 여부에 의해서만 좌우됐다.

힘이 없으면 총파업이 잘 성사되지 않을 수 있고, 요구안 관철이 좌절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행이 상습적으로 반복될 때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90% 가량의 조합원들은 ‘총파업은 안 해도 되는 것’이라는 경험 학습을, 경제협상에서 소외된 압도적 다수의 조합원들은 ‘남 좋은 일 해봐야 손해’라는 체험적 확신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경제주의에 방치된 조합원 + 독자정치활동과 사회적 교섭력 부재>라는 상황을 <대기업노조 경제투쟁의 동원력 + 정치사회적 대의>라는 형식 조합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악조합이었고, 조합원의 불신 누적과 조직력 이완이라는 악순환으로 귀결되었다.

노동조합의 발생과 발전과 성공은 단결을 통한 이익 경험을 주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은 기업의 벽을 넘어서는 계급적 이익 경험을 준 적이 없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오늘은 계급적 단결이 아니라, 대기업노조 경제이익의 병렬일 뿐이다.

예전에는 “빨갱이”라는 주변의 걱정이 귀찮아서 노동조합원임을 숨겼다. 지금 우리 조합원들은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는 욕이 두려워서 노동조합을 멀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