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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의 길

수화통역의 댓가(?)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9. 2. 8.

2009.2.8(일)

 

수화통역사지만 직장에 얽메여 살다보면 농인과의 만남과 소통은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평일에 중요한(?) 행사나 일이 있을때에는 휴가를 내고 농인을 만날 수 있지만 업무적인 만남이지 자유로운 만남은 아니다.

 

인간적인 만남들은 주로 일과후나 주말에 이루어진다.

그것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이 농인이 먼저 연락을 준다. 그럴때마다 수화통역사나 자원봉사자로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친분 관계로 만나는 것인니 분명치가 않을때가 많다.

 

어제도 평택에 다녀왔다.

농인이 불러 간단한 통역을 하고 잡담도 나누면서 저녁대접도 받고 왔다. 공식적인 통역수당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챙겨줄려는 농인의 모습에서 순수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계속에서 받는 통역수당(?)은 나에겐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기관에서 공식적인 통역수당이 책정되어 있을때는 당당히 받아 왔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이거나 비공식적으로 받는 통역의 댓가(수당)는 받고 싶지 않다.

 

수화통역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아내와 작은 차이가 발생하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내와 달리 난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지만 주 수입원이 분명히 아니다. 투잡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원칙이 존재한다.

 

통역의뢰를 하는 농인들의 기억속에 투잡이나 자원봉사 통역사가 아닌 수화를 아는 평범한(?) 이웃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업무적이거나 형식적인 만남도 필요하지만 인간적인 만남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농인으로부터 수화통역 의뢰를 받을때 나의 사생활은 대부분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농인이 직접 의뢰를 할 경우에는 그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쉽게 거절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농인들이 낮에는 주로 수화통역센터를 이용하지만 의뢰인(농인)의 통역 정보를 센터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센터내에서 공유되거나 유출될 것을 의심하는 농인들은 센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수화통역센터는 농아인협회가 위탁, 운영하는데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등 농아인협회 회원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비회원들은 꺼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비회원 농인들은 친분이 있는 수화통역사들을 찾게 마련이다.

 

농인이 통역의뢰를 하면 수화통역사인 나도 배우는 것이 많다. 도움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화통역의 댓가(?)라 치더라도 이미 충분하게 받았다고 본다.

 

우선, 새로운 수화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수화도 언어이기 때문에 수화를 사용하지 않거나 오래도록 수화를 보지 않으면 잊혀진다. 특히 농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면 그만큼 다양한 수화를 익히기는 더욱 어렵다. 따라서 수화통역 의뢰를 받는 다는 것은 새로운 수화를 새로운 환경에서 직접 익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농사회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수화통역사라 할지라도 농인들과 만남이 적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농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으며,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분명한 한계는 존재할 수 밖에 없지만 농인들과 한 사회를 살고 있는 이상 일상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도 농인들을 만나서이다.

 

상대적 자신감을 갖는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농인들이 살아가기에는 힘겹다. 교육에서부터 직업선택의 자유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가장 답답함은 당연히 소리의 차단으로 인한 정보와 소통의 부재다. 제한된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굿굿하게 살아가고 있는 농인들을 볼때마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무한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농인이 없다면 수화통역사의 직업이나 역할, 그리고 농인들을 향한 자원봉사도 필요없다.

수화통역사들이 농인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발전된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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