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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두얼굴

삼성반도체 백혈병․희귀병, 삼성LCD 까지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0. 6. 28.

약속 못 지키고 하늘나라 간 삼성맨

삼성반도체 백혈병․희귀병, 삼성LCD 까지

 

사회적으로 잊힐 만하면 터진다.

박지연 씨 사망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비롯 직업병 암 등에 걸린 피해 제보자는 55명으로 늘었다. 그중 17명이 사망했다.

더욱이 반도체 사업부뿐만 아니라 삼성LCD 사업부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의하면 제보자 중에서 삼성LCD 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의 희귀암을 얻은 사람은 6명이나 된다. 현재까지 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4명이 투병중이거나 희귀 병력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반도체 사업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해 할 것이 아니다.

종격동 악성신생물 ≠ 폐암

故 연제욱 씨는 삼성LCD 사업부 탕정공장(충남 천안시)에서 5년 2개월 동안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종격동 악성신생물(종격동 부위에 발생한 악성신생물로, 종양의 종류는 생식세포종)’이라는 희귀암에 걸려 발병한 지 1년 5개월 만에 숨졌다.

삼성전자 측이 관련 질병은 삼성전자와 무관하다고, 근로복지공단은 관련 질병이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피해자가 연일 늘고 있다. 심지어 삼성LCD 홍보담당자는 미디어충청과의 전화통화 중 연씨의 사망 원인이 ‘폐암’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오빠가 암 진단을 받을 당시 종양 크기가 너무 커서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받은 뒤에 크기를 줄여서 종양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항암치료에 들어가면 정자가 모두 죽기 때문에 미리 채취해야 한다며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무정자’라고 나왔어요. 다른 백혈병 피해자들도 생식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얘길 들으니 연관성이 있겠다 싶더라고요. 항상 씩씩하던 오빠는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여자친구에게 가서 ‘왜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며’며 처음으로 울었답니다.”

연제욱 씨의 동생 미정 씨는 오빠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오빠의 동료들을 만나고, 삼성LCD 라인에 대해 공부하고, 반올림을 찾아가고, 오빠의 노트북, 메일을 보며 관련 증거가 없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자기들이 아는 데까지 얘기해 주겠다’던 동료들은 반올림과 어머니가 사업장까지 찾아가자 갑자기 잔업과 회의가 있다며 나오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미정 씨의 노력으로 동료들로부터 오빠의 근무 환경과 관련해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오빠는 2004년 6월 삼성전자 탕정공장 LCD 사업부에 입사했어요. 동료들에게 전화해 본 결과 오빠는 LCD TFT(7라인 DRY-ETCH공정)에서 쭉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 라인을 맡아 셋업하고, 유지 보수 하는 일을 해 왔어요. 기계 사고가 없는 날은 기계를 점검하고, 사고가 있는 날에는 사고 원인을 밝혀 처리 결과를 적어 보고했데요. 오빠가 일했던 공정에서는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등을 사용했데요. IPA는 기준치 이상 노출되면 중추신경계는 물론 눈과 피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폐울혈과 시장손상 등의 증세를 일으키는 위험물질이예요. 또 LCD공정 중에서 TFT공정은 반도체 제작 공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해요.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도 오빠가 일했던 식각공정에서 근무했고, IPA 등 유해물질을 사용했죠.”

그러나 삼성LCD 측은 말했다.

일부 비슷한 공정도 있지만 LCD 7라인은 2004년 이후 지어진 최신라인이며, 유해물질은 기계안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유출 위험은 없다고.

 

 동생 미정 씨는 병상에 있던 오빠가 웃는 얼굴로 "내 동생 미정이가 제일 든든해"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단다.


목숨값 = 흥정 ?

오빠의 죽음으로 제욱 씨 가족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미정 씨는 삼성에스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가 2년 8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반올림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삼성백혈병와 관련해 선전전을 하면, 이를 막는 일을 했다. 미정 씨는 오빠의 죽음 뒤에 차마 그 일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오빠가 아프기 전에는 반올림이 뭔지도 몰랐어요. 기흥공장으로 삼성백혈병 선전전을 오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대기하고 상황 살피고 했어요. 우리들은 휴무도 반납하고 대기 했어요. 에스원 직원들은 이런 선전전이나 시위가 싫고 귀찮게 여겨지죠. 오빠가 사망한 뒤에 제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자주 시위하러 오는 유족들을 보면서 누구보다도 그 분들 마음을 잘 알기에 한편으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바로 앞에서 시위를 하면 저는 뒤돌아서서 다른 곳을 보고 서 있고 그랬어요. 매일 오빠 생각에 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3월에 진급확정도 된 상태였는데 다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습니다.”

부모님도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지옥 같은 일상을 보냈다.

미정 씨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어머니 최술연 씨도 한 숨을 쉬며 한 마디 했다. 숨만 쉬고 있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미정이는 신경성 위염이 심해졌어요. 저랑 미정이랑 둘 다 정신과에 다니고 있죠. 저는 제욱이가 병 진단을 받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이날 이때까지 충격이예요. 잠도 못자고 병원 왔다 갔다 하는 게 일이죠. 밤에 잠도 못자고 미정이랑 저랑 둘 다 우울증이 심해 치료를 받고 있죠. 제욱이 아빠는 술, 담배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서 산재 재심 청구를 마치고 나온 故 연제욱 씨 어머니 최술연 씨는 아무말 없이 먼 곳만 바라봤다.


한 가정이 파탄 났다.

제욱 씨의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성, 근로복지공단 측의 태도는 제욱 씨의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제욱 씨가 사망한 뒤 가족들은 지난 1월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3월 불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반올림에 의하면 산업재해 심사 과정에서 독립된 기관의 역학조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측 자료로만 일방적으로 불승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불승인 이유 중엔 업무와 관련성이 적으며,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어머니가 위암치료를 받았고, 외할아버지가 폐암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병들은 제욱 씨의 희귀암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결국 이들은 지난 14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청을 찾아 산재 재심 신청과 더불어 역학조사를 요구했다.

“오빠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보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오빠가 죽기 전까지 모두 331번 병원을 이용했어요. 입원과 내원일수는 566일로 입원일수까지 합하면 평균 3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간 것이지요. 복통, 피부염, 식도염, 근골격계 질환 등 진료를 받은 기록이 25쪽이나 되요. 그렇게 아팠으면서도 집안의 장손이라 그런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일만 했나 봐요.”

삼성측은 개별적으로 제욱 씨 가족을 찾았다. 그러나 가족들의 가슴엔 상처만 겹겹이 쌓여갔다.

(삼성으로부터)전화는 엄청 많이 왔어요. 집 앞으로 찾아온 것은 3번 정도 돼요. 집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애기하자고 하는데 주차장까지는 오지만 절대 집으로는 안 들어온답니다. 독립된 장소로 가죠. 산재 불승인 되고 나서 어머니가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고, 라인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삼성쪽은 산재에 준하는 산출공식이 있다며 계산해서 드리겠다고 했죠. 우리가 반올림이랑 같이 산재 재심 청구를 하겠다고 하자 괜히 반올림이랑 같이 해 봐야 뾰족한 수 있냐? 생계도 힘드니까 주는 돈 받으라고 했죠. 항상 같은 얘기만 한 답니다. 부모님이 마지막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서 막 소리 지르고 우셨어요. 목숨 값을 가지고 흥정을 하니까... 언론에 보도되고 또 전화가 왔죠. 산재 재심 청구 정말로 할 거냐고... 한다고 하니까 다음에 전화 준다며 끊더군요.”

희망 = 결혼

탕정을 지나다보면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삼성 직원들의 사원아파트, 꿈의 안식처 ‘트라팰리스’가 보인다.

그 길을 지날 때면 허허 벌판에 괴물같이 서 있는 아파트라며 질타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대체 얼마일까?’ ‘관리비만 엄청나다며?’ ‘저기 들어가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라며 부러운 눈길로 한 마디씩 거드는 사람들도 있다.

모범사원이었던 제욱 씨도 트라팰리스에 ‘당첨’될 만큼 열심히 일했다.

제욱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삼성맨’이 꿈이었고, 삼성에 입사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자부심을 가졌고, 미정 씨에게도 좋은 회사라고 추천했다.


“오빠가 기숙사에 살 때는 어머니와 저를 초대해서 기숙사 안까지 구경시켜주고, 놀이공원 티켓도 저렴하게 끊을 수 있어서 오빠랑 제 친구들이 놀러가고 그랬어요. 트라팰리스는 간부들이 당첨되는데 사원들은 고가점수가 높은 몇몇이 당첨되었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동기들 중에 자기가 제일 빨리 진급했다고 하니 당첨은 당연한 일이었죠. 이런 저런 제안을 많이 짜내서 제안상도 여러 차례 받았고, 항상 자기가 잔업을 제일 많이 해서 월급을 제일 많이 받았다며 자랑하곤 했어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어머니, 아버지, 저를 불러 구경시켜주며, 이젠 아파트도 당첨되었고, 결혼해서 자기가 부모님 모시고 살며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했어요. 결국 트라팰리스에서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지만...”

제욱 씨는 미정 씨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미정 씨가 시집갈 때 오빠가 직접 만든 LCD TV 풀세트를 사주겠다던 제욱 씨는 죽기 3일 전 강력한 진통제를 맞더니 끝내 유언 한마디 못하고 고통스러운 비명만 지른 채 하늘나라로 갔다. 제욱 씨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어디 이것뿐이랴. 다만 남은 자들은 제욱 씨가 다이어리에 “희망=결혼”이라고 쓴 글귀를 보며 야속해할 틈도 없이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었다.

피해자 수가 늘고, 반도체 사업부에서 LCD사업부까지 피해 규모가 확장되고 있는 일명 ‘삼성백혈병’은 이미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중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이 문제에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도 삼성백혈병 건을 접하며 ‘또야?’라고 질문하기 십상이다.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피해자(가족)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제욱 씨의 어머니 말이 곱씹어 지는 이유다.

“제욱이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해요. 한 가지 이유예요. 더 이상 이유는 없어요. 회사에서는 산재 재심 해 봐야 승인 안 날거라고 해요. 우리도 회사에서 돈 받고 끝내면 편하겠죠. 그래도 세상에 알려야 해요. 우리마저 입을 닫으면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까봐.”

 

(폄) 미디어 충청 ... http://www.cmed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