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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두얼굴

"'환불남'이라고? 나는 삼성의 사과를 받고 싶을 뿐이다"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0. 8. 1.

"'환불남'이라고? 나는 삼성의 사과를 받고 싶을 뿐이다"

휴대전화 폭발 피해자, 1인 시위 7일째

기사입력 2010-07-29 오후 4:04:18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단말기인 'SPH-W830(매직홀폰)' 폭발 사고의 당사자인 이진영 씨(28세)가 삼성을 상대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이 씨는 지난달 5월 충전 중이던 매직홀폰에 갑자기 불이 붙는 일을 경험했다.

이후 삼성은 이 씨에게 합의금 500만 원을 주면서 발화 원인이 단말기 결함이 아닌 외부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씨가 합의 과정에서 겪었던 삼성 측의 다양한 '압박'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지만, 사건 자체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관련기사: "삼성은 왜 휴대폰 폭발 피해자에게 500만 원을 줬나")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일부 경제지를 시작으로 언론들은 이 씨가 이전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노트북과 휴대전화 제품의 문제를 지적하며 환불이나 제품 교환을 받아냈던 전력을 들춰냈다. '환불남', '블랙 컨슈머(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의적인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와 같은 용어로 이 씨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정작 삼성은 이후 입을 다물었다.

매직홀폰이 외부 원인으로 불이 붙었다고 결론 내린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분석 보고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분석 보고서는 정보공개 청구 대상도 아니어서 이 씨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결국 지난 23일부터 이 씨는 몸 앞뒤로 피켓을 매고 삼성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왔다.

 ▲ 삼성 휴대전화 단말기가 불에 타는 사고를 경험했던 이진영 씨가 29일 서울 용산 한남동 삼성 리움미술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삼성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29일 오전 이 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 리움미술관으로 향했다.
리움미술관 근처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이 있다. 1인 시위를 시작하자 리움미술관 직원들이 다가와 "삼성전자 앞에 가서 (시위를) 하라"며 제지하려 했다. 이 씨가 녹취를 위해 녹음기를 꺼내자 직원들은 곧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이 씨는 오전에는 이 회장 자택 근처에 서 있고, 오후에는 삼성 본사로 향한다.

이 씨의 관심사는 단말기 사고 원인에 그치지 않는다.
설사 단말기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씨가 분노하는 것은 합의금을 전제로 언론사에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법적 소송을 들먹이며 이 씨를 압박했던 삼성의 '고객 서비스'다.

이 씨는 "어떻게 보면 삼성이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이 씨와 유사한 사례를 겪은 제보자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고 이후 삼성 측의 '압박'을 경험했지만 홀로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어떤 피해자는 삼성 측에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마자 들은 말이 '언플(언론 플레이)하지 맙시다'였다고 하더라고요. 언론은 대기업보다 일반 시민에게 더 불편한 존재에요.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언론에 피해 사실을 제보하는 건 공익적 측면에서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거기에 항의하면 법무팀이 대응할거라는 등 위압을 가하죠."

이 씨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 공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나 정당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도 찾아다니고 있다. '환불남' 보도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이 씨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가 삼성의 지배구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사과를 받고 싶어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만났던 삼성 측 담당자의 위압적인 태도와 발언에 대한 솔직한 사과요. 자신들의 애프터서비스(A/S)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요. 보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김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