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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두얼굴

삼성 노동자 박종태씨의 투쟁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1. 2. 9.

삼성 노동자 박종태씨의 투쟁
한겨레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그는 23년 동안 일한 삼성전자에서 쫓겨났다.

갓 스물에 입사했으니 청춘을 바쳤다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닌데 왜 쫓겨났을까? 하긴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닌데다 최근의 연이은 자살까지 노동자들에겐 ‘흉흉함’에서 으뜸 기업이 되고 있는 삼성인데, 노동자 하나쯤 강제 해고시키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이 모든 일들이 결국 무노조 삼성과 연결된다는 점을 바로 박종태씨가 증언해주는데, 실은 “외유내강”, “상대방의 인격 존중”과 함께 “내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중점을 둔다”를 삶의 신조로 가진 그가 23년 동안 삼성에서 버텼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직접적인 화근은 2008년 삼성의 이른바 ‘한가족협의회’의 사원측 협의위원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직장생활 동안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던 그는 새로운 임무에도 충실했다. 너무 충실했던 게 문제였을까. 출산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인사고과 등 사원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사측에 시정과 개선을 요구하자 눈엣가시로 찍히기 시작했고, 그 자신 직무대기, 왕따 근무, 일상적 감시, 진단서 무시 등 인권 침해 대상이 되었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당해야 하는지 절절히 느낀 그는 기어이 2010년 11월3일 내부 통신망에 노동조합의 절실함을 호소한 글을 올림으로써 삼성왕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11월26일의 해고 통지는 이미 예고된 셈이었다.

 

그는 매주 수요일 수원 영통구에 있는 삼성전자 앞에서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기는 것을 끝까지 보이겠다”면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는 강남 삼성본사 앞 시위도 계획할 만큼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삼성이 눈이나 깜짝할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이어 삼성 불매를 호소한 <굿바이 삼성>까지 나왔지만 한국 시민사회의 대응은 ‘나쁜 삼성’과 ‘좋은 삼성’을 구분하고 ‘나쁜 삼성’을 ‘좋은 삼성’으로 만들자고 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성에 의해 존재이유를 부정당한 민주노총도 가시적이며 효과적인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이보란 듯 박종태씨를 해고한 것도 삼성 쪽으로 기운 힘의 관계를 반영한 게 아니겠는가.

 

분노와 연대,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없고 권력 없는 진보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한다면, 며칠 전 성남시의회 의원이 보여주었듯이 진보 인사조차 연대의 대상을 분노의 대상으로 바꾸는 지경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최근 북아프리카에서 민주화 바람이 광풍처럼 일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지지와 후원 아래 요지부동으로 보였던 수십 년 장기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이를 “불가능의 도래”라고 말했다. 불가능의 도래… 그렇다. 요지부동일 것 같은 자본권력도 무너질 때가 기필코 온다.

 

인간 본성이 자유를 지향하는 한, 민주주의가 단순한 투표권 행사를 넘어 우리 몸이 거하는 곳마다 주인이 될 것을 요구하는 한,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다만 지체될 뿐. 다시 말해, 우리가 각자 가정에서 주체로 살아가야 하듯이 우리 몸이 거하는 배움터와 일터에서도 주체로 살아갈 것을 다름 아닌 우리 몸이 요구하는 것이다. 박종태씨가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그것으로, 몸 스스로 체득한, 몸이 거하는 곳에서의 주체성 요구다.

 

그의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기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서 실현될 때까지 분노 어린 연대의 손길이 곳곳에서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가 말하듯 혼자 힘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짐을 지고 있기에. 그리하여 기필코 승리할 때까지 그의 아내와 초중등생인 두 딸이 튼튼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