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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전망IN

<현장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1>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9. 27.

 

<현장활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1>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하여

- 아래로부터 3대 혁신운동

(의식개혁, 생활개혁, 활동개혁)을 전개하자! -


정성희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


지난 노동계 비리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내에 위기 진단과 혁신 방향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위기 현상이나 그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이 깊이있게 분석되지 못하고 실천적 극복 대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씩 노동운동에 훈수나 두는 몇몇 학자들이 지배세력의 대 노동자, 대 노조 공세의 끝자리에 편승한듯이 대기업노조운동진영을 이건희 삼성재벌 회장, 국제투기자본  등과 나란히 놓고 한국사회 위기의 10대 주범으로 몰아부치는 경거망동도 지켜봤습니다.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위기 극복을 바란다면, 현장이나 노조의 튼튼한 주체를 세워 아래로부터 혁신운동의 불을 지피도록 모든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수박겉핡기식 진단으로 흔히 자본가들이 쓰는 충격요법과 전시효과에 의존해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        


1. 혁신의 요체는 사람을 바꾸는 것


혁신의 요체는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과 활동을 바꿔야 합니다. 이러한 혁신의 본령을 소홀히 한 채 정책을 다듬고 노선을 수정하고 조직체계를 전환하고 투쟁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지금의 노동운동 위기가 극복되고 혁신, 발전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활동가들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의식과 생활과 활동 전반에 걸쳐 혁신의 모범이 제 때에 창출되지 못하고 힘있게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혁신 공감대 넓어졌으나 구체적 대안과 실천이 부족해

그동안의 혁신 논의를 통해 현재 노동운동 위기 현상이나 징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집약됩니다.
예를 들어 조합원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향이 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노조의 일상활동, 일상투쟁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장토론이나 현장조직력이 약화되었다, 노조간부 및 활동가들이 관성화, 관료화되어 진정성이 떨어진다, 간부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 기업별 노조체계의 실리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 노사담합에 익숙해져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으며, 마침내 비리사건까지 불거졌다, 공장안 임단협 중심의 경제투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대공동투쟁도 탄압사업장에 대한 지원, 연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일반은 물론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도 무관심하다, 현장 제 조직이 난립하고 노조권력을 둘러싼 활동가 내부의 분열, 갈등이 심하다.


또 10%의 노조 조직율로 계급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다, 공장밖의 사회적 연대에 소극적이거나 형식적이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의 한계다, 산별노조운동이 정체 내지 답보상태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 조직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지도력의 위기이다, 더구나 경제특구, 산업공동화에 이어 DDA, FTA 등 자본의 추가 공세, 비정규직개악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음모, 복수노조시대의 도래 등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새로운 격변이 예고된다, 특히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폐지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다는 등의 문제점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는 윤리 강령 제정, 도덕성 교육과 규율, 징계를 강화하자, 일상활동을 활성화하고 현장조직력을 강화하자, 간부 및 활동가 교육 강화, 노동자 문화축제 등 교육문화사업을 강화하자, 조합원총투표로 산별노조로 전환해 산별노조 건설을 촉진하자,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노조 조직율을 높이자,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하자, 의결기구에 비정규직 등 소수자 할당제를 도입하자,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산업별 사회정치적 의제를 제기하자,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키자, 세상을 바꾸는 정치총파업투쟁을 벌이자, 민주노동당을 강화하자, 단일 연대연합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자는 등의 당위적이고 다소 형식을 앞세우는 대안 제시에서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명정대하고 원칙적이며 비타협적인 혁신 주체 세워야  

물론 오늘의 노동운동 위기는, 한마디로 개방화, 유연화, 자유화, 민영화로 표현되는 제국주의자들과 국내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공세에 올바른 사상적 조직적 투쟁적 입체전략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 조직적 투쟁적 입체전략과 노동자들의 피부에 와닿은 세부적인 전술을 확립하고 이를 끈질기고 비타협적으로 실천할 튼튼한 주체를 세우지 못한 것이 위기의 주체적 요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혁신이란 말은 무성하지만 현장활동가들에게 왜, 무엇을, 어떻게, 누가, 언제, 어디서 혁신할 것인지 명료하고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또 ‘위기, 위기’ 하면서 패배 의식을 확산하거나 도처에서 혁신을 얘기하는 만큼의 세부 실천방안을 내오지 못하고 일부 대안을 찾아도 활동가들로부터 조합원들까지 참여하는 조직적 실천으로 전환하지 못해 노동운동의 혁신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운동의 혁신을 힘있게 촉진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 첫공정은, 그 무슨 똑똑한 이론가가 논리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실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활동가들로부터 지금의 의식상태, 지금의 일상생활과 일상활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공유하며,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저들의 체계적인 공세앞에 노동조합, 노동운동은 망하고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바로 혁신을 고민하는 현장활동가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의 관성과 인연에 메여 혁신의 첫 공정부터 막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노동운동의 혁신이 그 첫 단계에서부터 막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활동가들이 자기자신의 정신상태와 생활실태와 활동모습을 고백하는 데 주저하고 상황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혁신의 출발이 더디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를 포함해 너나 할 것없이 활동가들이 자기반성의 관점에서 현상황을 솔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자신의 사상의식과 일상생활, 일상활동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와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노동운동의 진정한 혁신을 위해 일체의 개인적 정파적 욕심을 버리고 공명정대하고 원칙적이며 비타협적으로 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존의 조직관성이나 정파논리나 살가운 인연에 얽메여 노동운동 혁신의 길에서 세상을 바꾸는 동지를 찾고 이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굳은 각오와 순결한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고 문제를 해부, 인식하는 것만으로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 것만으로는 노동자, 민중의 운명이 걸린 혁신과업을 한 걸음도 전진시킬 수 없습니다. 위기의 제반 현상들을 직접 보고 느끼는 현장활동가들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활동가들부터 세상을 바꾸는 ‘자주적(변혁적)노동운동’으로 재무장하고 사회변혁의 분명한 상과 목표, 구체적인 실현 경로를 터득하며 한국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지위와 역할을 철저히 익히는 조건에서 그 최후 승리를 위한 불타는 신념으로 자신과 조합원들의 사상의식과 일상생활과 일상활동을 과감히 드러내 일대 혁신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믿습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도, 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 땅의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서민들의 처절한 삶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기업노조운동의 경우, 정규직의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공장안의 투쟁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본의 아니게 사회양극화를 촉진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비정규직 관련법, 노사관계로드맵 등 법, 제도의 개정에서 개선보다는 개악의 요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설령 제도 개선이 있어도, 사용자들이 지키지 않고 정부는 수수방관합니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노력이 없는 자기 밥그릇 찾는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자는  실패를 면치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와 역사의 주인인 민중이 ‘자주적 민주주의’를 기치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완수하는 동시에 ‘자주적 민주개혁’을 실현해 ‘자주적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우리의 목표와 전략은 확고합니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통일과 집권과 사회변혁의 연관을 통한 세상을 바꾸는 정치전략, △대중정치투쟁을 기본으로 선거, 의회투쟁을 결합하는 투쟁전략, △당-전선-대중조직이라는 삼위일체의 조직전략, △대중 중심의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사업방법과 서민적 작풍,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며 전투적인 기풍 등에 대해서도 이제 총론 수준의 교양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아직 실감나게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노동자 스스로 주인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 구현이 절실하다

노조운동과 관련해서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 임단투 중심의 노동운동을 극복하자는 얘기는 오래되었습니다. 경제투쟁 중심의 전투적 노조주의의 한계가 지적된 지도 꽤 세월이 흘렸습니다. 사회개혁적 요구를 강조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노총’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그 우경적 요소가 날까롭게 비판되기도 했습니다.

 

IMF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 철폐, 고용안정 쟁취’ 일면에 집중, 준비되지 않은 총파업투쟁을 연발한 것도 그 불가피성을 인정되더라도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을 자초한 요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자주적 단결을 기초로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교섭을 보조축으로 결합하는 투쟁노선에서 볼 때, 사회적 합의주의에 경도된 우편향과 교섭을 무시하는 ‘투쟁을 위한 투쟁’의 좌편향도 비판되었습니다.

남아공이나 서구의 사회적 협약 모델을 흉내내면서 노사정 등 사회적 교섭에 과도한 기대를 건 우경향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동시에 노동자 요구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정권과 자본의 반노동자적 음모를 폭로하며 요구의 일부라도 관철해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달래고 더 큰 투쟁을 준비하는, 전술적 공간으로서의 교섭 자체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좌경모험주의, 투쟁만능주의도 응당한 자기반성이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다 선명한 내용의 통일된 민주노조운동노선이 확립되지 않고 있으며, 위기 진단과 혁신 방향을 모색하는 이 와중에서조차 잘못된 사상과 태도로 인해 활동가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없지 않습니다.

전투적 노조주의에서 전투성을 배우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서 사회개혁적 요구와 연대성을 취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정립하는데 매우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으로 됩니다.

 

그러나 전투적 노조주의나 사회적 또는 사회개혁적,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는 사람 중심, 민중중심, 조합원대중 중심의 사상이 없었으며 확고한 변혁적 전망과 과학적 노선이 없었습니다.

 

설령 변혁적 전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거나 변혁의 목표와 그 경로가 분명치 않았고 제각각이었으며, 소수 활동가들에 그쳐 조합원들에게 이를 공공연하게 교육, 선전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주체적 조건에서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닥쳤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답은 자명합니다. 올바른 사상과 노선, 올바른 지도를 통한 통일단결과 대중실천에 있습니다.

 

승리의 보검인 사람 중심, 민중중심, 조합원대중 중심의 사상에 기초한 자주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확립하고 구현해 지금의 위기를 시급히 극복하고 세상을 바꾸는 전체 진보운동에서 차지하는 민주노조의 임무를 다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무상의료 무상교육, 자주, 평화, 통일  등 산업업종별, 사회적, 전민중적 요구와 의제를 제출하고 89%에 이르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산업별 공동투쟁, 통일투쟁을 강조하면서 산업별 노조로의 재편과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중장기적으로 노조운동의 민주적 재편, 통일을 목표로 한국노총과의 연대공동투쟁을 벌이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합니다.

 

또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하는 제도개선적 요구와 준정치투쟁을 벌이면서 세상을 바꾸는 전국적 정치총파업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은 자주적 변혁적 노동운동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힘있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 역시 언제부터인가 노동대중에게 진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개혁, 생활개혁, 활동개혁 없는 거창한 구호, 조직, 투쟁은 공염불

지금까지의 총론 수준의 변혁전략과 민주노조운동노선이 왜 현장활동가에게 공허하게 받들여지겠습니까? 제시되는 노선과 지침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지도집행력의 권위가 실추된 데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활동가와 조합원들의 의식, 생활, 활동의 실제 모습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공세앞에서, 기업별로 고용불안에 떨며 약간 오른 임금에 자족하고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기주의적 생활양식에 무한정 노출돼 있는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에 연대하고 산별노조로 전환하며 세상을 바꾸는 정치총파업투쟁을 벌이자는 얘기가 쉽게 먹히느냐는 것입니다.

 

가끔씩 실시하는 교육과 선전, 투쟁시기의 선동과 총투표만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투쟁이 자신의 삶과 직결된 운명적 문제로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의식은 계급적 존재의 반영이기는 하나 저절로 올바른 계급의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사상의식은 교양과 생활과 활동을 통해 변화, 발전합니다. 이 때 사람의 생활이란 사회정치생활, 물질경제생활, 사상문화생활 3대 영역으로 구성되며, 사람의 활동은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조직)에서의 사회적 실천행위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조합원들의 사상의식은 지금 어떤 환경속에 놓여 있습니까? 조합원들의 일상생활, 일상활동이 어떠한지는 현장활동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가 생산의 주체, 사회변혁와 역사발전의 주인이라면서 노동자다운 생각, 노동자다운 생활, 노동자다운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노동계급적 존재라 해서 자연히 노동계급의식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자본주의 사상문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도 튼튼한 노동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노동자, 노동운동의 현실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의식, 노동자의 생활, 노동자의 활동을 바꿔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의식개혁, 생활개혁, 활동개혁 등 3개 혁신운동을 치열하고도 목적의식적으로 전개하지 않고서 노동운동의 거창한 구호, 거창한 조직, 거창한 투쟁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사상의식을 변화시키고 실천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별노조 건설, 단일 연대연합체 건설,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투쟁, 다 좋습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의식개혁, 생활개혁, 활동개혁, 이 3대 혁신운동과 만날 때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3대 혁신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는 혁신의 중심주체가 될 현장과 지역의 활동가들이 ‘대중에게서 대중에게로’라는 대중 주체의 방식으로 그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다만, 필자는 노동운동 20여년의 경험으로 볼 때, 현단계 노동운동은 활동가들부터 의식개혁, 생활개혁, 활동개혁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아래로부터의 3대 혁신운동의 뼈대만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2. 의식개혁 ; 교육토론 강화와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해

먼저 의식개혁의 경우, 간부 및 활동가들에 대한 교육토론을 강화해야 합니다. 소수 간부와 활동가들은 개별적 집단적 방식의 집요한 교양학습과 토론, 올바른 조직생활과 대중속의 조직적 실천을 통해 사상의식도 바꾸고 투쟁의지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일반조합원들은 교육이나 선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적 접근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조합원들의 생활영역인 사업장과 동네에서 자주의식, 공동체의식, 변혁의식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조 일상활동으로서의 문화활동을 새롭게 혁신, 활성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회사의 문화프로그램을 개조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동네)에서 당과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주민단체들과 힘을 합쳐 민중교육문화공동체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80년대 한 때 유행했던 ‘해방춤’과 같은 군무(群舞)도 없어지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서민의 애환을 녹인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도, ‘촌극’도 어느듯 사라졌습니다. 하다 못해 ‘수건 돌리기’ 같은 집단적 오락도, 놀이도 실종된 채 새로 개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이나 현장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자신의 삶과 활동을 고백하면서 새로운 자세를 가다듬던 ‘삶의 이야기(라이프 스토리)’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루 수십명이 생계를 비관해 자살하고 1천만명 이상의 비정규직과 농민들이 신음하고 있음에도 피를 토하고 가슴을 에이는 격정적인 서정시 하나 편편치 않습니다.

점차 잊혀지고 있는 집단적 놀이문화를 새로운 미각에 맞게 풍부하게 개발해야 합니다. 좋은 영화, 좋은 시나 수필, 좋은 연극, 촌극 등의 문예물을 많이 만들어 보급해야 합니다. 참석자들이 함께 어울어지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수백, 수천, 수만의 노동대중의 심장을 울리는 대중 집회문화도 새로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관성적인 무대위의 인물이나 문화프로그램만으로는 이제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문화활동가들과 올바른 문예사상을 갖고 있는 전문가와 지역의 문화일꾼들이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노동자문화생활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3. 생활개혁 ; 노동자의 정치생활, 경제생활, 문화생활 대폭 바꿔야

그러나 의식개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식은 지식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학자는 아닙니다. 지식은 정보와 자료를 많이 습득해 재해석하고 체계화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자신의 계급적 민족적 처지와 이해관계로부터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바꾸려는 관점과 태도이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한다고 얻어지지 않습니다. 올바른 사상의식에 대한 초보적인 문제인식이 있고난 다음에는 그 사상의식에 맞게 자신의 생활을 바꾸고 활동을 바꿔야 합니다.

 

생활과 활동, 즉 실천이 바꿔지 않은채 말로만 옳은 얘기를 백날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생활과 활동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통속적인 말은 진리입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사회정치생활, 물질경제생활, 사상문화생활을 전면 혁신해야 합니다.


정치생활, 민주노동당과 그 외곽조직의 내용 강화를 통해

우선 정치생활을 혁신해야 합니다. 전체 노동자의 0.5%, 민주노총 조합원의 5%밖에 민주노동당에 가입돼 있지 않습니다. 당에 가입한 조합원의 90%는 당비만 내고 당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노동조합 정치위원회나 당의 현장분회가 조합원들의 정치생활을 내실있게 보장해주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조합원, 나아가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들을 다양한 기회를 통해 대거 입당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현장분회, 지역분회와 그 외곽조직의 내용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동네와 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조합원들이 이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노동자 정치생활의 양과 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향우회, 동창회, 친목회나 TV에서 듣고 배우는 정치 얘기로는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철저히 깰 수 없고 새로운 친미보수세력의 농간이나 사이비 개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현재 준비정도로는 조합원들의 정치생활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의 정치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민주노동당도 아래로부터 일대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사업장의 현장활동가들 처럼 동네에서도 지역활동가들이 조직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움직여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정치생활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적극 나서야 합니다.(<당 위기 진단과 혁신방향 모색을 위하여> 참조) 

    

경제생활, 새로운 민중경제공동체를 개척해야

또 경제생활도 변화를 가해야 합니다. 이제 경제생활도, 집권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외세 지배하의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부터 무한경쟁의 냉혹한 시장경제질서에 무방비로 내맡길 일이 아니라 민중들이 서로 도와 가며 사는 동시에 자주의식과 공동체의식, 변혁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대 혁신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경우, 생산과정에서 노동해서 먹고 삽니다만, 신용과 유통, 소비과정에서는 새로운 공동체생활이 필요합니다. 농민들도 WTO질서 변화, 통일농업 실현 등 중장기적 처방 이외에 당장 먹고 사는 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대정부 요구 쟁취와 더불어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수입농산물과 차별화된 유기농 작목별 영농을 모색하고 조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의 노동자들과 만나 긴밀히 연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몰락하는 중소영세상공인들도 새로운 생산유통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여 원하청 불공정 거래, 바이백, 부당한 상가임대차 등에 대응하고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한편, 변혁운동의 물적 토대로 기능하도록 강력히 견인해야 합니다.

 

대학생들도 입학하는 순간부터 등록금 걱정, 취직 걱정입니다. 길거리투쟁은 말할 것도 없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자주 통일, 진보정치 등 거대담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학생운동 위기의 객관적 요인입니다. 여기에 기존 관성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의식과 생활과 활동에서 일대 혁신을 단행하지 못하는 학생운동의 미숙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양심적인 지식인과 중소상공인들이 하나로 뭉친 민중경제생활공동체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민중경제생활공동체운동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조나 지역의 신용조합, 소비조합, 생협 등 지금까지의 운동을 전면 총화하고 자주의식, 공동체의식, 변혁의식에 기초한 새로운 생활공동체운동을 깊이있게 연구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협동조합운동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권력과 생산수단이 제국주의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가들에게 있는 지금, 시장질서와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는 매우 강고한 토대와 실력있는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생활, 새로운 교육문화공동체운동으로

문화생활은 특히 중요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는 교육, 언론, 문학, 예술, 오락, 스포츠 등 정치, 경제생활을 제외한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이 중요한 영역을 우리는 그동안 외세 지배하의 자본주의가 양산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자유주의, 양키왜색, 황금만능, 퇴폐향락, 공미숭미 등 온갖 잡사상이 지배하는 썩은 문화생활에 그대로 맡겨왔습니다. 노동자, 민중들을 타락한 이 천민자본주의의 문화홍수속에 그대로 방치해놓고서 어떻게 계급의식, 민족자주의식을 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노래방 가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가사도 다 까먹었습니다. 거저 퇴근하고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집에서 쉬는 날에는 주로 채널 많은 TV나 컴퓨터앞에서 폭력, 섹스 등 저질 문화를 흠뻑 마시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었습니다. 주5일 근무의 대기업, 공기업 노동자들도 다소 나은 여가생활을 하고 있으나 개인주의, 이기주의 문화생활에 물젖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문제는 훨씬 심각합니다. 갈수록 ‘있는 집 자식들’이 소위 일류대학을 많이 가는 구조와 추세입니다. 우리사회의 빈곤과 양극화는 이렇게 대를 잇고 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하니 노동자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들을 사설학원으로, 입시지옥으로 내몹니다.

 

마누라까지 비정규직으로 취직시켜 80~100만원 남짓 더 벌어가지고 겨우 우리 자식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출세주의, 자유주의 같은 비인간적인 정신세계, 약육강식의 경쟁원리, 돈 중심, 엘리트 중심의 자본주의사상을 익히고 배우는데 쏟아붓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없는 집 자식들’도 재주 있는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입시교육만이 아니라 자주정신, 공동체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문화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미래의 아름다운 공동체사회의 주역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시장(市場)와 ‘연’(緣)이지 결코 계급(의식)이 아닙니다. 무한경쟁의 치열한 시장논리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으며, 여기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전근대적 인간관계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온세상을 점령한 이같은 타락한 생활문화속에서 겨우 1년에 몇 번하는 조합원 교육, 가끔씩 나오는 노조 홍보물, 극히 일부의 풍물패, 노래패, 1만부도 안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등의 진보민중매체 몇가지, 가끔씩 참여하는,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 영향을 받지 못하는 대중집회....

지배세력과의 사상전에서 우선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사상문화생활에서 지는 싸움을 하고서, 지배세력 보다 사상적 도덕적 우월성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큰 조직을 만들고 큰 투쟁 몇 번 한다고 노동자들의 생활 처지가 나아지거나 세상이 바뀌리라 생각한다면 그 것은 환상이며 대중에 대한 기만입니다.  

 

그래서 지역별로 교육문화공동체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문화생활을 일대 혁신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결심하고 힘을 모으면 당장 가능합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민주노총 조합원, 전농 회원들이 중심주체가 되어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와 농민, 양심적인 중소상공인까지 만나 자주적이고 창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교육문화공동체생활속에서 차별의식을 해소하고 계급의식, 평등의식, 공동체의식을 높이며, 지배세력의 낡은 사상문화를 혁파해 들어가야 합니다.

 

정규직 가족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가족들까지, 대기업 노동자가족만이 아니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가족까지 참여하는 이러한 교육문화생활공동체로 뒷받침될 때만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도 공동투쟁도, 산별노조의 내실있는 발전도 제대로 실현되고 촉진될 수 있습니다.


4. 일상활동, 실천투쟁도 전면 개혁해야

그렇다고 생활개혁만 하면 노동자들의 사상의식과 실천의지를 높이고 법과 제도의 개선도 이루며,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노동자들의 활동이고 실천투쟁입니다. 생활개혁만 하고 활동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자주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하지 말자, 세상을 바꾸지 말고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그냥 우리끼리 살아보자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공동체생활도 세상을 바꾸는 변혁적 실천의 토대로서만이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통일과 집권과 사회변혁을 통해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현체제를 그대로 놔둔 채 그 속의 어떤 공동체 섬을 한번 실험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생활협동조합주의를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몸담고 있는 노조나 현장조직, 정당과 사회단체의 일상활동과 실천투쟁을 전면 개혁해야 합니다.


편의주의, 형식주의, 관료주의 극복하고 ‘운동의 진정성’을 회복해야

우선 조직활동, 교육선전활동, 문화체육활동, 쟁의활동, 조사통계활동, 실천단활동 등 갈수록 정체되고 관성화되는 단위노조의 일상활동부터 재점검하고 자주적 변혁적 노동운동론에 맞게 새롭게 혁신, 발전, 풍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의 자주성을 기반으로 민주성과 통일성을 밀접히 결합하는 자주민주통일의 조직운영 원리가 노동조합운동에 관철되고 있는지 정교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현장토론에 기초한 총회방식 등으로 조합원들의 자주적 요구가 수렴되고 통일단결이 실현되며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교섭을 결합해 요구를 관철하고, 다시 이 전과정을 조합원들과 함께 나누고 집약, 집중시킴으로써 조합원의 의식 향상과 조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깊이 검토해야 합니다.

노조나 사회단체나 당이나 예전에는 활동가들이 몇 번씩 찾아가 성의를 다해 사람을 조직하고 또 조직했지만, 요즘에는 문자메시지나 전화로 연락하고 맙니다. 이런 자세로는 승리할 수도 없고 승리해도 적들의 공세에 곧바로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와 싸우며 노동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망각하면 안됩니다. 이제 일체의 편의주의, 요령주의, 형식주의,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운동의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저마다 떨쳐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총연맹과 산별 연맹이나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활동과 투쟁도 전면 해부해 일대 혁신해야 합니다. 노조 상급단체의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역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과 활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도부를 포함한 모든 상근 활동가들의 사상정신상태, 조직생활, 조직실천의 모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변혁 사상과 노선 없는 정책과 실무와 일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활동가를 포함한 조합원들의 통일단결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등을 돌아보고 단지 노조 상급단체의 상근실무자를 넘어 대중조직에 몸담고 있는 변혁운동가로서의 자신의 결의를 다시한번 다져야 할 것입니다.

 

전해투, 자동차산업노조연맹(지금은 금속산업노조연맹으로 통합)을 거쳐 민주노총 창립때부터 5년간 실무자로 일한 바 있는 필자로서 반성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만, 현단계 노동운동은 노조 상급단체의 모든 일꾼들에게 변혁운동가로서의 높은 각오와 사업수완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주적 변혁적 노동운동론에 입각한 정치정책노선, 투쟁노선, 조직노선, 사업방법과 작풍, 조직기풍이 관철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단계 노동운동, 노조활동가들에게 변혁운동가로서의 각오와 순결성 요구해

90년대 초반 동구권이 와해되면서 진보진영내 사상적 약화 내지 동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노동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단결의 힘으로 민주노조운동이 발전됨으로써 진보정당도 만들고 연대연합전선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양적으로 커지는 대중운동에 자족하고 사상운동, 조직운동을 게을리 한 나머지 속으로 곪아가는 문제점이 누적돼 급기야 위기 계선에 다다랐습니다.

민족자주화, 사회자주화, 인간자주화, 세계자주화의 길에서 고비마다 시련과 곡절은 있으나 끝내 승리하며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변혁에의 확고한 신념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연합세력의 가공할 신자유주의 세계화공세를 미리 내다 보고 철저히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 전반의 질적 발전이 지연되면서 이른바 ‘운동의 위기’로 까지 불리게 된 것입니다. 국민파든 중앙파든 좌파든, 전국회의든 현장의 힘이든, 적어도 활동가라면, 지난날의 이 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고 더 늦기전에 노동운동 혁신의 길, 구국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노조 상급단체의 지도부를 포함한 모든 상근활동가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계파, 정파를 불문하고 서로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장점과 단점을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최대공약수를 중심으로 혁신하고 최소공배수의 원리로 통일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과 같이 지도부나 활동가들이 상호 불신과 선입견을 그대로 간직한 채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대중속으로’, ‘대중에게서 대중에게로’의 정신을 구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현장의 뜻있는 활동가들이 고된 작업을 마치고 밤을 낮 삼아 이쪽 저쪽 활동가들을 만나 혁신과 단결의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총연맹과 그 가맹, 산하조직이 당면 정세와 노동자 민중의 요구, 그리고 자신의 위상에 맞게 당면 핵심 요구와 정책을 제대로 집약, 내걸고 있는지,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교섭을 결합하는데 있어 좌우 편향은 없는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생산직과 사무전문직, 남성과 여성 등 노동계급 전체를 단결시키는 방향으로 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자주성 민주성 통일성의 원리에 맞게 운영하는지, 조합원 주체의 대중적 사업방법과 늘 대중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작풍,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기풍 등이 아직 살아 있는지를 엄격히 평가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다양한 방법과 기제로 생활에서 따뜻한 동지애가 흐르고 실천에서 진정성이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또 우리사회의 기득권자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대중집회, 이대로 좋은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감동을 주는 대중집회문화로 그 내용과 형식을 과감하게 일신하고 또 일신해야 합니다.

 

대학로나 광화문의 대중집회도 무대위 인물들이나 프로그램 위주의 행사일 뿐, 수천 수만의 참석자들이 한데 어울러지는 집단적이고 군중적이고 창의적인 감동의 도가니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삶의 정서와 투쟁의지가 빠짐없이 녹아있는, 그러면서 새로운 전망을 눈에 보이듯이 제시하고 그 희망을 위해 투쟁하는, 신명나고 결의높은 큰마당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