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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무슨일이

지독한 사랑 - 보슬비 같은 청년 복기성씨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12. 20.

지독한 사랑 ― 보슬비 같은 청년 복기성 씨

엄기수 『창』 편집부


복기성(30)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열아홉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네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부당한 노동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격 탓이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기아자동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노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끝내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회사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후 기아자동차는 2004년에 노조가 결성되었다. 그는 현재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가 복기성 씨를 만나기로 결정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가끔 사무실의 전화나 홈페이지로 책을 주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신간뿐만 아니라 전에 나온 책들을 골고루 한 권씩 구입하기도 하고 구입한 책들을 다시 주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그에 대한 모두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 복기성. 그 친구 참 좋은 사람이지.” 또 한 분에게는 아주 특별한 말을 들었다. 그가 구입하는 책들은 본인이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위의 동료들이나 구속된 동지들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평택역 앞에서 생면부지의 그를 기다렸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고 서울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바람에 찬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복기성 씨를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왠지 ‘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인사를 하자마자 그의 집 앞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먼 길을 달려온 터라 다시 차에 오르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은 아내가 진통을 시작했어요. 원래 예정일이 다음주라서 안심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오늘 갑자기 진통이 시작됐어요.”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은 잘못 잡았다. 그런데 그는 참 좋은 날 찾아왔다고 도리어 우리의 미안함을 덜어 주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일찍 시작된 산통이란다. 첫 아이의 출생을 앞둔 것이다. 아내는 그보다 네 살 연상으로 평택에 와서 풍물이나 연극 등을 하는 문화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우리는 평택천이 흐르는 길 옆 포장마차 <아지메집>에 자리를 잡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지메가 국수를 내왔다. 그의 아파트 창문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이야기 중에도 우리 모두는 아파트 창문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런 것을 ‘공명’이라고 해야 하나? 두 대의 바이올린 중 하나의 바이올린으로 G선을 연주하면 책상 위에 놓인 나머지 한 개의 바이올린에도 G선이 울리는 것. 연인이 하품을 하면 마주보고 있던 또 한 명의 연인도 따라 하품을 하는 것. 그 짧은 순간에 그의 걱정과 기대가 우리의 걱정과 기대가 된 것이다.


잠시 후에는 그의 직장동료인 이창근 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창근 씨는 같은 직장의 정규직 노동자다. 그는 동료에 대한 자랑이 끝이 없었다.


“이 친구를 집회 현장에서 만났는데 처음에는 조직화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 두 번 만나면서 그럴 만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야간작업을 마치고 잠도 안 자고 집회마다 찾아가는 친구예요. 대부분 운동하시는 분들 말이 많잖아요. 진짜 말로써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 발로 참여하는 사람은 적죠. 이 친구는 조용하지만 진짜로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거리 한구석 모퉁이의 작은 돌처럼 언제나 그가 있었던 것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그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더 큰 힘을 만든다. 민주노총 경기도지역본부에서 주는 모범노동조합상을 받았다니 그의 열정이 보통은 넘는다.


그는 또 구미, 평택, 청주에 있는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읽은 책들을 토론하고 투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참여한다. 모임은 보통 1박 2일로 이루어진다. 예전에 사이버노동대학에서 만났던 동지들이 주가 되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더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창근 씨와 함께 지역 노동운동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 자체가 소외된 것으로부터의 싸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역의 여건은 더욱 좋지 않다는 것이다. 평택만 해도 쌍용, 만도, 한라, 이젠텍 등이 있고 송탄과 평택의 중소기업에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 또한 많지만 조직화된 인원은 소수라는 것이다. 또 그럴 만한 여건과 환경이 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사랑이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말을 하는 내내 복기성 씨의 선한 눈매에서 자신의 일과 세계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랑 하나 하나가 모여 세상은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어느날 아침나절 보슬비가 차락차락 내린다면 거기에서 어제 복기성 씨가 거리에서 흘린 비릿한 땀방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보슬비 같은 청년 복기성 씨를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그는 소낙비처럼 요란하지 않지만 천천히 조용하게 더 깊이 젖어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삶이 보이는 창』에 바라는 점을 묻지 않느냐고 오히려 그가 먼저 물어왔다.
“『삶이 보이는 창』은 일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또 한편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이나 투쟁에 성공한 사업장의 사례나 이야기들을 좀더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아쉬웠지만 오래 그를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어디선가 만날 날을 기대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들어가셨어요? 가시고 두 시간 후에 애 낳았어요. 12시 넘어서요. 아이 이름을 민주라고 지었어요.”
그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져 있었다. 다니는 직장이 9월에 계약해지가 예정되었다는 말이 자꾸만 밟혔다. 그의 앞에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