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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자료실

'의료민영화'의 진실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8. 7. 28.

 

[당원을 위한 정책 브리핑 4호]

 

진보신당 당원이면 꼭 알아야 할 '의료민영화'의 진실

 

박형근 교수(제주대)


1. 의료민영화란?

 

2008년 한국의 상황과 맥락에서 의료민영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의료민영화란 민간보험회사가 주체가 되는 민간의료보험이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경쟁 혹은 대체할 수 있도록 발전하고, 영리법인 허용 등의 조치를 통해서 자본시장으로부터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조달 기전을 합법화하여, 이윤추구를 존재 이유로 하는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 간 자율계약을 통해 의료서비스 범위, 비용, 질을 결정하고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괴담’ 취급하는 정부 당국과 일부 학자들은 의료민영화에 대한 반대에 직면해서는 “건강보험 민영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의료민영화’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추진속도를 늦추었다는 것뿐 정부당국의 추진 의지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전과 달리 정말 변한 것은 국민들이 당연지정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국민들 앞에서 차마 정직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모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바다.

 

2. ‘의료민영화’→‘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로 이름만 바꾸다

 

의료민영화 논란이 지속되는 근본 이유는 정부 당국과 의료서비스산업 활성화론자들이 현재 추진 중인 의료제도 변화의 실체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고급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등 다양한 수사를 수반하며 일련의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핵심은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대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여 민간의료보험회사가 의료기관과 자율적인 계약을 통해 의료서비스 제공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며 그 모델은 미국식 의료제도라는 사실이다.

 

영리법인병원 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설립 허용 등과 같은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조달 메커니즘의 합법화, 당연지정제 예외 허용과 같은 당연지정제 예외 의료기관 제도화, 건강보험 대체재로서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그 핵심이다. 겉으로는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의료민영화 핵심정책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 논란이 멈추질 않는 것이다.

 

3. ‘의료민영화’를 위한 3대 핵심과제

 

현 보건의료제도에서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한 3대 핵심과제는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정책의 조합에 따라서 의료 민영화 추진의 강도와 속도가 결정될 정도로 기존 제도는 현행 건강보험체계를 유지시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구체화된다면, 정부당국이 시장에 의료민영화 추진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보다 자세히 검토해보도록 하자.

 

4.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위헌이라고?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에 대해 언급하면, 현정부는 이미 당연지정제를 고수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천명하였다는 반론이 바로 돌아온다. 필자도 현 정부에서 당연지정제를 손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사정이 녹녹치 않다.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를 기대했던 정부 입장이 돌변하자 의사회가 당연지정제 폐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다. 당연지정제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5조원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연지정제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으로 당연지정제 위헌 소지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와 보건복지부는 제주에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더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적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에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리법인병원은 주식회사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에 대해서 생산품의 범위와 가격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 헌법 119조 ②항에 담겨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에 의거하여 일정한 규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특정 시점에서 영리법인병원에 대한 ‘당연지정제 적용 위헌소송’이 제기된다면 합헌 결정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왜냐면 기존 위헌소지 이외에 영리법인병원의 주주인 주주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예상되는 개헌 논의 과정에서 헌법 119조 ②항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건강보험당연지정제 위헌소송’ 등에서 보듯이 국내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점차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경향은 외국의 보건의료 주요 현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 행정당국에서는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돼도 당연지정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책임질 수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5. 영리법인 병원 vs 비영리법인 병원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허용하기로 정부가 결정하였다. 국내에서 의료기관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오래인데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든 말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영리법인병원이 비영리법인병원과 다른 차이점은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금 현재는 의료기관 설립자격이 의료인과 제한된 법인에게 국한되어 있는데,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이후에는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자본시장, 즉 주식 및 채권 발행을 통해서 의료기관 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주식회사 병원이 탄생한다고 보면 되는데, 주식과 채권 발행이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현재 수백조원대에 이르는 부동자금이 이윤을 목표로 의료시장에 유입되는 통로가 합법화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영리법인병원은 투자자에 대한 수익금 배당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이윤 추구 행동이 보다 더 뚜렷해진다고 이해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넷째,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이 의료 정책과 제도에서 갖는 중요한 차이점은 영리법인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요양기관으로 당연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기왕의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높은 의료공급자들이 건강보험체계 밖으로 이탈하거나,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가격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작동할 것이다.

 

또한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이익 확보가 가능한 보험료 산출을 위해 건강보험의 자료마저 얻게 되면 영리법인병원과 민간보험 간의 자율적 가격 결정에 기반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가 구축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될 것이다.

 

6. 의료민영화를 위한 또 하나의 정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은 참여정부 시절 의료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핵심은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의 제도화, 기업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의 단체 가입에 대한 세제혜택,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상품개발을 위한 건강보험공단의 의료이용 정보공유이다. 기왕에 존재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교통정리, 실손형 보험 가입자 확대를 위한 보험사에 대한 특혜 제공,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상품 개발을 위해 민간보험사에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개인의 의료이용핵심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 등이 요체다.

 

관계 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었으나, 의료민영화 우려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큰 관계로 발표가 잠시 보류된 상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면서도 의료민영화는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건대 정부당국은 한 번도 민간의료보험활성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7. 의료민영화를 위해 똘똘 뭉친 재벌, 의사, 보험업계, 보수언론

 

건강보험제도가 갖추어져 있고, 의료기관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며, 행위별 수가제도에 의해서 보상이 이루어지는 조건에서 '서비스 차별화 전략'을 앞세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즉 재벌병원 등장 이후 병원들이 대형화되면서 환자유치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의 병원 간 경쟁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향후 이러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미 병원순위가 해당병원의 ‘자본조달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양상으로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쟁력은 자부하지만 자본조달이 어려운 일부 공급자와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병원사업을 제약하는 기존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기운이 확산되어 왔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법인병원 설립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이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주장의 핵심인데, 그 골간은 (민간)보험자와의 협상을 통한 공급자의 가격결정권 제고와 투자확대를 위한 합법적인 자본조달 수단의 확보에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일찍이 의료서비스산업으로의 진출을 갈망해왔던 보험업계와 재계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고, 보수언론을 통해 그 당위성이 현란하게 유포됨과 동시에 이제는 정부 정책의 주요 현안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의료시장은 의료기관 성장의 ‘모태’가 되었던 건강보험제도를 ‘배신’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평할 수 있는 지경이다.

 

8. ‘경제성장’ 논리와 맞바꾼 ‘국민 건강권’

 

경제부처에서 의료민영화에 집착하는 속내는 단순하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의료비 급등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제조업 분야 투자가 첨단 업종에 집중되고, 단순 제조업의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되면서, 제조업의 고용창출효과가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거시경제 운용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조업 투자 여지가 줄어들고 내수 진작 효과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국가경제의 성장기조 유지와 자본의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투자 공간이 절실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자본이 주목한 분야가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즉 의료, 교육, 금융이다. 영세 자영업자 중심의 국내 서비스 산업의 GDP 대비 매출비중이 2003년 기준으로 OECD 평균에 비해 10%나 낮다는 사실은 국내 서비스 산업의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여준다(그림 1: 그림은 파일을 참고해주세요).

 

또한,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취업유발계수가 1.7배 크기 때문에 고용 창출효과도 더 높다. 2007년 OECD 보건통계를 보면, 자료를 제출한 19개 나라의 2004년 전체 고용인구 중 보건의료 종사자 평균 비율이 6.12%인 반면, 우리나라는 3.1%(2004 경제활동별 지역내총생산 자료, 통계청)로 OECD 평균에 비해 440,429명이나 적다. OECD 평균 수준으로 의료분야의 고용이 확대된다면 45만명에 가까운 신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의료서비스 산업의 매출액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진료비 규모 시장이 민간보험회사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건강보험 총 진료비가 40조원 대인 현 규모에서 25%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보험회사는 10조원의 매출증가가 가능하고, 순익률 10%일 경우 1조원이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 연평균 증가율이 10% 수준인데, 민영화 이후 그 기울기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고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험회사와 병·의원에 대한 자본투자를 통해 고용이 증가하고, 복잡한 민간의료보험 서비스 관행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의료비가 전년대비 10조원 증가하면 GDP 1% 추가 성장도 현실화된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부처는 의료 민영화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경제부처에서는 의료 양극화와 그로 인한 비극의 양산쯤은 국가 경제의 지속 성장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감수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부처의 논리는 한마디로 의료 민영화의 사회적 파괴력에 대한 일체의 고려 없이 의료서비스 산업을 지속적인 고도성장의 ‘도구’로만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부처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추진된다면 단기간 경제성장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재경부 논리에 동의할 수 있다. 또한, 한국 경제의 발전 단계상 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통해서 고용창출이 절실하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지금 경제부처에서 주장하는 방식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9. 한국 의료민영화의 모델이 된 ‘미국식 의료 제도’의 실체

 

현재 경제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은 미국식 의료제도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공동화된 과거 산업도시의 경제를 유지시켜주는 주된 버팀목의 하나가 의료서비스 산업이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장제도가 없는 국가로서 민간보험과 민간공급자의 자율적 계약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고용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육·법률 등 연관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유발효과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고비용의 의료산업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이 버틸 수 있는 것은 기축통화 발행국의 지위와, 중국 등 아시아 개도국으로 제조업 생산기반을 이전하면서 값싼 공산품을 향유하는 동시에 인플레를 차단하고, 세계 금융을 주무르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의료비가 전체 GDP의 15%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GM의 직원과 퇴직자에 대한 의료보험료 지출부담이 연 적자 규모인 10억 달러에 이르고 있고, 태국과 같은 개도국이 저렴한 치료비로 미국 환자들을 끌어들이면서 한계 국면에 다다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미국과 같은 의료체계가 제도화된다고 가정해보자.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인한 인플레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고, 원가 상승으로 인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는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막대한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의료소외계층의 개도국 유출에서 비롯되는 경상적자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장의 GDP 증가에 연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0. 40조원이 넘는 국민건강보험제도 → 삼성건강보험제도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기존 보험시장의 포화와 외국계 보험사의 국내 시장 진출로 국내 보험사들이 어려운 국면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탐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가 금기의 선을 넘어선 데 있다.

 

일전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과 같이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의 내부 전략보고서에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을 민간의료보험의 최종적인 목표로 제시하고 치밀한 준비를 벌이고 있다. 현 단계를 ‘실손 의료보험’을 매개로 정부의료체계와 연계 관계를 형성하는 중간 단계로 파악하고, 다음 단계는 ‘병원과 연계하고, 국민건강보험과 부분적으로 경쟁하는 민간의료보험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다(그림 2: 그림은 파일을 참고해주세요)

 

삼성생명의 이러한 전략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통해 그 당위성이 유포되었기도 하였고, 건강보험 이용자료의 보험사 제공 추진 등 삼성의 요구가 상당 부분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실정이다.

 

11. 의료관광 산업 육성, 한국에서 과연 성공할까?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의료산업 육성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기반으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출범하였고,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의료가 국민 기본권 보장이 아닌 비즈니스로 전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의료산업을 국가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설정하자는 노 대통령의 근거가 허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돈 많은 부자들의 경우 돈 더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받을 데가 없다.

 

그래서 이들이 미국으로 치료받으러 나가고 있으며, 그 규모가 1년에 1조원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근거인데, 한국은행의 자료에서 원정진료의 규모가 1조원이 아니라 연 5백억원 규모로 밝혀지면서 그 허구성이 입증된 바 있다. 지금은 영리법인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해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부를 창출하자는 주장

 

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 허구성의 실체에 대해 살펴보자.

 

1) 동남아국가의 의료관광 성공은 낮은 인건비와 저렴한 부대비용 때문

전 세계적으로 의료관광의 열풍이 제법 거세게 일고 있다. 그 실상은 더 흥미롭다. 거센 의료관광 열풍의 진원지가 미국과 같은 의료 선진국이 아닌, 태국이나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 암에 걸린 재벌총수들이 미국 유수병원을 방문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의료관광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관광 신흥시장 성공 비결의 핵심은 자국의 우수 의료진에게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허용하여 ‘고급/첨단’ 인프라를 구비하게 하고, 개도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여 양질의 의료를 미국 의료비 대비 10%-30% 수준의 가격으로 제공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의 의료보장 소외계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이 없는 4천5백만명과 보장성이 낮은 보험에 가입한 수천만명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동남아 의료관광의 주 고객이다. 동남아에서 의료관광이 성공한 비결은 한마디로 가격이다. 병원 원가의 절반이 인건비인데, 2003년 한국제조업 노동자 월평균 인건비를 100으로 보면, 태국은 9.6%, 인도는 1.4%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인건비와 저렴한 부대비용을 무기로 양질의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나아가 영리법인병원을 통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여 우수한 시설과 고가의 장비를 구비할 수 있었던 것도 빠르게 성장한 비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의료관광의 진원지는 고급 ‘명품 시장’이 아닌, ‘중저가 시장’이라는 점이다. 70-8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저임금 구조가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첨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 판이다. 생산, 유통, 소비가 동일한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료서비스 특성상 재화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이동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2) 동남아에 비해 5배나 비싼 한국 의료비

그럼 이러한 모델이 국내에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 검토해보자.

의료관광 활성화 논자들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경쟁력의 문제를 낮은 서비스 질에서 찾고 있다. 의료진의 기술은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관련 규제로 인해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면, 서비스가 고급화될 것이고, 국내 의료기술은 우수하기 때문에 의료관광 또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서비스 고급화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의료비 수준과 인건비 및 물가수준을 고려할 때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추가 고용과 영리법인병원 도입으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의료비가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고, 그로 인해 동남아 대비 가격 경쟁력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생산된 신발이 동남아산 신발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동남아 국가와 현 건강보험체제에서의 한국 의료비를 비교해보자. 국내 종합전문요양기관의 입원환자 비급여 비율을 고려해서 인도, 태국, 싱가폴과 주요 시술 비용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표 2: 표는 파일을 참고해주십시오).

 

그러나 인도, 태국, 싱가폴의 진료비에는 항공료, 병원 치료비, 호텔 숙박비가 포함된 가격이고, 이들 나라의 영리법인병원 병실의 대부분이 1인실임을 고려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국내 병원에서 이들 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는 가격차이가 보다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리법인병원 허용으로 의료비가 2-3배 이상 급등할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의료관광에 대해 ‘무지’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의료관광 논의에서 ‘가격 경쟁력’에 대한 검토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 고급화를 위한 영리법인병원 합법화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이며,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국내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을 위한 입법예고 단계까지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동남아에 비해 더 고급화할 수 있고, 치료 기술이 더 좋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가보실 필요가 있다. 시설, 장비, 진료 수준 어느 면에서도 차별화가 쉽지 않다. 아직 한국 의료가 영·미와 같은 ‘명품’ 반열에 올라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인의 눈에는 고만 고만한 ‘중저가’ 상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인데 값이 4-5배나 더 비싸다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의료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고,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어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국내 환자들이 값싼 외국병원을 찾아나가는 의료관광이활성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현재 태국이나 인도의 병원들이 한국을 주요시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한국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가와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한국 시장에서 자신들이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외국환자 유치 활성화를 위한 정책추진이 오히려 국내 환자의 외국 유출을 부추길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관광 활성화의 주된 원인이 선진국 의료보장제도의 부실화에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2. 이명박 정부의 포기할 줄 모르는 ‘의료민영화’ 전략

 

작년 한국보건행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토론회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보건의료정책 담당자는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과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해서 “당연히 한다”라는 답변을 제시한 바 있다.

 

대중들이 의료 민영화의 실체를 자각하면서 정부당국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유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연지정제 폐지 이외에 다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완전히 접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고, 제주도를 포함해서 경제특구를 거점으로 ‘의료민영화’ 전국화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며,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반의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을 필두로 하는 의료시장은 의료 민영화 조치를 갈망하고 있으며,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한 다양한 논리와 구체적 정책의제들이 활력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민간보험사들은 막대한 건강보험시장을 예의주시 하며 틈새를 찾거나 파열구를 내는 것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고, 자본시장은 의료시장이라는 새 신부 맏이에 설레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 민영화는 그만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고수만으로 의료 민영화를 감당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갔다. 건강보험제도의 위기!,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정부·여당이 의료민영화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영리법인병원 불허,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의 표준화를 제외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조치 포기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확대와 의료인력 확충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책기조가 변하기 전까지 의료민영화는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