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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삼성불매와 노무현 한계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1. 3. 8.

 

 

어제(월) 중식시간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시위'에 활용했던 피켓

 

 

삼성전자 박종태대리가 부당해고를 당하고

'1인시위'를 시작한지 100일째가 되었다고 하네요..

 

70키로였던 몸무게가 60키로로 줄었다고 합니다.  몸관리 및 치료를 위해서 매일같이 진행되던 '1인시위'는 매주 월,수요일만 한다고 합니다. 

부당해고된 사실을 법원에서 다투겠지만...그물망처럼 쳐놓은 삼성의 로비력과 권력앞에서 보편적인 상식이나 정의는 너무 힘겨워 보입니다.

 

삼성은 여러면에서 최고인게 사실입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3권을 무시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삼성 이건희 일가는 헌법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박종태 대리뿐만이 아니고,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사망한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권은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부당하게 세습되고 있는 이건희일가을 위해서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떠나는 것이 삼성입니다.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현재는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정권을 장악할때도 자본에게만 끝없는 자유를 보장해주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속되었고 삼성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국민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았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조선일보에 맞서 싸웠지만 조선일보의 자금줄인 삼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언소주에서 진행하였던 조중동에 광고하는 '광고주불매운동'은 다시 지속되어야 합니다.

조중동에 광고하는 삼성, 이건희 일가가 세습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삼성자본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워야 할 것입니다.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노동자들, 깨어있는 소비자들, 그리고 그들이 뽑아준 정치인들이 당당하게 나선다면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속에서 삼성제품 불매와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이땅의 모든 양심세력들과 연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전남대 김상봉 교수가 쓴 글을 부분적으로 퍼왔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말을 지배하는 자는 언론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그 언론이 썩을 대로 썩어 있으니, 노무현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결코 확고한 지반 위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정확한 현실 인식이었다. 그가 이런 문제들을 시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임기 내내 그와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이 선 자리가 어디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준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음을 자각하고, 그에 걸맞게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고 그와 맞서 싸웠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노무현이 불행했다고 말한 까닭은 그가 새로이 설정한 싸움의 대상이 결코 새로운 시대를 근본에서 규정할 만큼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모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지역문제가 해소되고, 언론이 제정신을 차린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 땅에서 인간의 불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것을 알기엔 너무도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역문제와 언론문제의 이면에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가 설정한 그 두 문제하고만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가 신자유주의에 그렇게 속절없이 투항하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싸움은 민주화된 시대에 싸움의 전선을 새로이 넓힌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표면의 적과 싸우면서 정말로 싸워야 할 본질적인 적에게 투항해버렸으니, 그것이야말로 그의 불행이며 시대의 비극이었다.

 

 

노무현과 삼성의 개인적 관계가 어떠했는지, 그가 부산상고 선배였던 삼성 구조본의 이학수 사장으로부터 언제부터 어떤 후원을 받았는지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치자금을 삼성으로부터 받았는지, 그런 것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것은 중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이 어떻든 그가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을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하고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을 주미대사에 임명했던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노무현이 조선일보와는 달리 삼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다는 것을 모자람 없이 증명해준다.

조선일보에 먹이를 주는 자가 삼성인데,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그리도 비타협적으로 싸울 줄 알았으면서, 그 배후에 웅크리고 있는 삼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의 한계였으며, 우리의 불행이었다.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여론의 왜곡과 검찰 같은 권력기관의 부패와 권력남용에 대해서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와 그것이 극단화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다. 취임 초반부터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면서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그는 마지막에 한미 FTA를 밀어붙이다 청와대를 떠났다.

 

그 사이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정상적인 사회였더라면 2000년 삼성 자동차가 천문학적 손실을 내고 파산했을 때, 대우의 김우중 회장처럼 몰락했어야 할 삼성의 이건희는 최고의 부자가 되고 대다수 국민들은 88만 원 짜리 인생으로 전락해갔다. 그 자신이 책임 없다 말할 수 없는 이런 상황 앞에서 그가 한 일은 마치 점령군 앞에 투항한 장수처럼 이제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인정한 것이었다.


 

삼성이 문제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 말했지만, 그렇다고 시장이 나라를 지배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초창기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력적 추진자였던 영국의 대처 수상은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에 반대해 ‘사회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옳다면 동일한 전제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시장도 없다.’ 다만 개별 기업과 그 기업을 지배하는 자본가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 지배한다거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언제나 누군가가 지배한다. 그렇다면 지금 누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삼성이 지배한다. 그리고 부당한 방법으로 삼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건희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이다. 모든 권력의 정당성은 지배받는 민중들 자신이 그 권력을 정당한 절차를 통해 위임했을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삼성의 이건희에게 우리를 지배해달라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권력을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우리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이제 그의 자식이 대를 이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정치가 다른 무엇보다 시민적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이라면, 삼성과 싸우는 것은 바로 지금 가장 절박한 정치적 과제이다.

단순히 무상급식이나 무상의료 같은 복지의 확대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기업에 의한 시민적 자유의 억압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그 기업독재의 정점에 있는 삼성과의 전면적인 싸움에 나서지 않는 한, 우리는 막힌 하수구를 뚫지 못하고 그 위에 소독약만 뿌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 중요한 과제를 팽개친 채 모두 어디서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한나라당은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늘 그랬듯이 북한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다. 마치 북한의 침략만 막아내면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하지만 지금까지 이 나라의 우익 세력이 북한을 핑계로 내부에서 독재적 권력을 추구해 온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니, 지금 그들이 기업독재를 막아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한나라당의 독재와 싸운다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 삼성의 기업독재를 막아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그것 역시 부질없는 희망이다.

 

그들이 김대중에 기대든 아니면 노무현에 기대고 있든지 간에, 그들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군부독재국가를 기업독재국가로 순조롭게 이행시켜놓은 장본인들이다. 이런 사정은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투쟁하는 정당, 운동권 정당이라 각인되어 있지만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외세와 싸우는 정당일 뿐, 삼성과 싸우겠다는 정당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신당의 정치인들이 삼성과 싸우겠다고 나서지도 않으니, 과연 우리는 지금 이 나라의 정치인들 가운데서 누구에게서 다음 시대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모든 시대는 인간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사람을 부른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치인은 연예인 흉내를 내는 오렌지족도 아니고, 복잡한 정책을 말하면서 아는 척 하는 먹물도 아니며, 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싸움꾼이다. 그런데 김용철변호사의 책에 얽힌 뉴스가 뉴욕타임즈지의 대문에 걸리고, 프레시안에서 <삼성을 생각한다>는 특집기획이 한 달 이상 계속되도록 단 한 사람의 정치인도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있다.

 

그러고도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당신들의 비겁한 침묵을 모르고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정으로 그대들이 이 땅의 책임있는 정치인들이라면, 이제 삼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당신들이 대답하라. 삼성의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