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통역은 외국어 통역이 아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원이 소송 과정에서 수어통역 지원을 신청한 장애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결정을 하였다.
청각장애인(법률적으로는 ‘농인(聾人)’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온당하다)이 법원에서 가사소송 진행 중 장애인에 대한 사법지원 및 청각장애인 수어통역 지원을 신청하였으나, 가사사건의 경우 '소송비용 자비부담' 원칙 등을 이유로 수어통역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자비로 비용을 예납한 후에 비로소 수어통역인과 동행해 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자 "청각장애인이 재판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진정을 낸 것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법원 등 관공서에서 국어를 사용하는데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어기본법은 제3조에서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고 하고 있고, 한국수화언어법은 제1조에서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라고 하고 있고, 제2조 제1항에서는 '한국수화언어는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수화언어, 즉 한국수어는 우리나라에 있어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이다.
그러기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즉 농인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은 청인(聽人)이 국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농인의 수어 사용에 대하여 통역을 하는 것은 농인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농인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청인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어통역은 수어와 한국어, 두 공용어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임에도 수어통역 지원을 외국어통역 지원처럼 소송비용의 관점에서 비용을 납부하도록 한다면 이는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보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다.
한국수화언어법 제16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어통역을 필요로 하는 농인등에게 수어통역을 지원하여야 하고, 공공행사, 사법ㆍ행정 등의 절차, 공공시설 이용, 공영방송, 그 밖에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여 농인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어통역 지원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판절차나 수사절차 등 사법적 절차에 있어 국가에게 수어통역을 지원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음에도 법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는 구체적으로 수어통역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하여는 별다른 규정이 없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어통역을 위하여 즉시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언어라면 선언적인 구호에 그칠 것은 아니며 농인들의 수어 사용이 청인들의 국어 사용과 동등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가시적(可視的)인 길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제도와 법절차에서 인권에 대한 실질적이고 세밀한 감수성이 담길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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