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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의 길

농인의 부름을 받고 천안 다녀가는 길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9. 10. 8.

 

모든 약속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선약을 깨고 다른 약속을 잡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젊었을때는 더 많았다.

특히 아내와 먼저 일정(약속)을 잡았어도, 이후 농인에게 통역의뢰를 받으면 십중 팔구(80~90%)는 선약이 깨졌다.

 

한때는 아내 보다 수어가 더 좋았었고, 농인에게 통역의뢰를 받으면 아내 또는 집안 일은 돌보지 않고 뛰어 나갔었다.

그리고 부부싸움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선약이 불가피하게 깨질때 사정 얘기를 하면서 이해를 구했으면 괜잖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열정만 있을 뿐 지혜롭지 못했다. 통신기기에 익숙치 않았고,

아내도 수어통역사라 같은 입장으로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소홀했었다.

 

오늘도 중요한 선약을 깨고 농인의 부름을 받고 천안을 다녀가는 중이다.

경기민언련 운영위원회 회의와 수원 환경운동연합 후원주점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선약을 깬 것이다.

 

동료 운영위원님들께 미안한 일이지만 수어통역사로서 농인에게 필요한 현장을 외면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랄뿐이다.

 

오늘 만난 농인은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몇년전 결혼식때 통역을 해준 일이 있어 어렴풋이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일을 잘 마무리하고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잠깐 나눴다.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는 근면성실한 맞벌이 농인 부부를 만나 뿌듯하고 좋았다.

 

(그 농인은 농아인협회 가입을 안하고, 수어통역센터도 이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내년부터는 농아인협회에 가입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