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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는 언어다

장애인을 사회복지로만 가두지 마라!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4. 12.

(퍼온글)

 

장애인들을 사회 속에 함께 하려고 많이들 노력하고 있다.

 

아니 예전에도 사회 속에 함께 하는 움직임들이 많이 있었다. 정창권 씨의 책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을 뿐 차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의 세계에서 똑같이 대우받았던 것이다. 조선 초중기까지는 그랬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장애인들이 거의 시설에서 감시와 처벌의 삶을 살아간다. 재가 장애인들 중에서는 밖에 못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직도 군중은 장애인들을 시설에 있기를 바라고 나오길 않길 바라고 있으며, 편견의 눈길을 많이 주고 있다. 시설 속애서 감시와 처벌을 번갈아 가면서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아졌고, 편견의 인식도 높아졌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무감각, 장애인 복지에 대한 참된 의무가 아닌 거짓된 핑계 부담이 높아졌다. 그리고 모든 게 비장애인 중심의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장애인들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 장애인이 밖에 나와 일을 하고 돌아다니면 그것은 장애를 극복했다고 떠들어 댄다. 이런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군중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장애인들이 하는 학문은 사회복지, 재활, 특수교육 쪽으로만 생각한 지 오래된 일이다. 즉 학문조차도 장애인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었던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정창권 교수의 책,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록 빠진 장애인들이 있었지만 인문학의 장애인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음악가는 장애인들이 음악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외국에서는 장애인을 다룬 학문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물론 그들의 나라도 오해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장애인들을 받아주는 수도회가 많다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얘기가 빗나갔지만, 장애인들의 시각의 시작은 사회복지를 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장애인 문제는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이 많다. 장애인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모순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회학이 필요하고, 장애인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심리학의 차원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문제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공 쪽은 장애인 문제에 접근했다고 본다. 특히 보조기기를 만들려면 이공 쪽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문제를 역사학으로 해석을 시도한 정창권 교수처럼 장애인 정책과 사회참여의 역사를 알려면 역사학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교육은 특수교육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통함교육의 목소리가 높고 장애인 특별전형이 없는 대학도 장애인들 받아주는 현실에서 가두는 것보다 함께 하는 교육이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 그전에 많은 장애인들이 특수라는 말 한 마디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던기!  통합교육은 사실 어려운 게 맞다. 그러나 그런 건 핑계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구교대 교과과정을 보면 영재교육만 나와 있고 장애아 교육이 없다. 이것은 장애인 교육차별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학문 역시 장애인들의 문제를 사회복지, 재활, 심리, 특수교육 쪽으로 보면 곤란한 게 많다.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학, 철학, 교육학, 종교학, 역사학, 물리학, 화학, 공학, 농학이 장애인문제에 접근을 함께 하길 바란다. 나는 사회학 전공이다. 사회학으로 오늘의 장애인 문제를 접근하며 고민한다. 또한 철학적 사유로 장애인들의 삶의 의미를 바라보고 앞으로의 문제를 고민해 보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 그들이 잘 사는 시대가 올 때,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한국은 김구가 말한대로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선진국보다는 먼저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