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어는 언어다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3. 17.

어제는 농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느끼고 경험하고, 지금까지 배운 수화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하고싶은 얘기도 못하면서 불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화교실이 개강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청인들이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몇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우든 배우는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수화를 배우면 배울수록 깊어져가는 농 사회에 대한 이해와 감정의 폭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해와 희생,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단 것입니다.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냥요", "수화가 필요하거든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다른 방법으로 드리고 싶어서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수화통역사가 될래요!" 등등 .......

수화를 배우시려는 분들의 일반적인 그리고 거의 비슷한 대답입니다.
물론 대단합니다. 그 의지와 노력들이.... 하지만 수화 배우는데 절실히 필요한 대답들은 아닙니다.

어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배운다는 것이며, 그 공동체가 가지는 공통의 가치관과 공통의 감성을 지녀가는 것을 배워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과 감성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화공연이나 찬양으로 쓰기 위해서 배우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 누구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 할 수 없으며 그 대답 또한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화찬양의 대부분의 존재가치는 그 외형적인 모습에 가치를 두는게 한국 교회에서 수화찬양을 배우고 가르치는 대부분의 이유이고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농아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며, 또 그들의 세계를 우리의 시각으로 생각하며 우리의 세계를 그들의 시각으로 느끼며 생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관심과 열정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농인들이 수화를 쓰는 이유도 그만큼 처절하며 그만큼 한이 서려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수화를 배운지 만17년이 지났습니다. 
농인과 대화도 하고 청인을 대상으로 수화교육도 하며 부끄럽지만 통역도 합니다.

우린 그들의 생활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여유롭게 가지며 수화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화의 의미 또한 절실함에 있음을 여러분 모두가 기억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