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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뭐길래

"조선일보가 저를 갖고 논 것 아닙니까"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0. 6. 10.

"조선일보가 저를 갖고 논 것 아닙니까"

조선일보 기고했던 류문상 교수...기고글까지 편집하는 조선일보에 분노

 

지난달 류문상 호서대 교수는 한편의 글을 썼다.

류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서 국가와 사회에 대해 관심이 적은 제자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류 교수는 조선일보에 자신의 글을 기고했다. 조선일보에서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 기고했던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류 교수는 9일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류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글 분량이 많아서 줄일 수 있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조선일보 김모 기자의 말을 들었다. 글을 어느정도 줄이겠다는 건지, 언제 신문 지면에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리고 10일 아침 학교로 출근한 류 교수는 지인뿐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항의하는 전화를 받았다.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자신의 글 때문이었다.

 

류 교수는 신문을 펼쳐들고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도했던 글의 취지가 상당부분 왜곡돼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4 석장 분량의 원문과는 달리 신문에는 A4 한장 분량의 글이 실렸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의도했던 글의 취지도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비난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각색돼 있었다.

일례로 조선일보에는 "학생들에게 현 정권이 잘못한 정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답이 구체적이지 않고 관심도 적다. 무조건 싫다고 한다. 맹목적이라는 느낌이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류 교수는 이런 문장 자체를 아예 쓰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또 "학생들의 생각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꼬여 있었다. 아니면 아예 나라나 사회 문제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큰 이슈가 있으면 음모론 같은 것에 쉽게 빠져든다"고 썼는데, 류 교수는 "제 원본글에서 음모론이니 이런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류문상 호서대 교수

류문상 호서대 교수ⓒ 민중의소리

특히 류 교수는 '대학생들의 우려할 만한 수준의 국가관과 안보의식'이란 글의 제목으로 "학교는 취업을 위한 기계를 육성하는 곳이 아닌 똑바른 역사관과 철학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을 육성하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데 10일자 조선일보는 '대학생들과 대화해 보셨나요, 놀랄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바꿔달고, 전체적인 맥락상 대학생들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글을 짜깁기해버렸다.

류 교수가 쓴 원본 글에는 또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험을 토대로 "프랑스의 경우 보수와 진보의 개인적 성향은 매우 잘 교육된 깊이 있는 역사관과 철학이 바탕을 이루므로 어떤 사실 앞에서 정치 성향보다 앞선 객관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판단을 한다"고 적었지만, 조선일보에는 "프랑스는 좌우 국민의 성향이 분명한 곳이다. 그래도 사실은 인정하고 개인적인 판단을 한다. 우리의 경우는 사실과 관계 없이 지가기 좋아하는 편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옹호하고...(중략)...이런 인식이 대학생 사이에 너무도 급속히 퍼져 정보의 편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프랑스 얘기를 하면서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객관적이고 능력있게 시국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프랑스 교육의 우수성을 말하려는 것이었어요,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한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열등하다는 글로 바뀌어버렸어요. 소통을 위해서라도 교육제도가 바껴야 한다는 글의 내용의 맥락을 바꿔서 (대학생을 비난하는 내용으로)끼워 맞춰버린 겁니다. 제가 봐도 웃기는 글이 돼버렸습니다"

류 교수는 지난달 조선일보가 <광우병 촛불 그후 2년> 기획기사에서 인터뷰 대상자의 뜻을 왜곡 보도해 논란이 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상의 문제라 어느정도 그 기사는 각색이 가능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량적인 원본의 글이 있는데, 이것을 건드릴 생각은 상상도 못한 거죠"

류 교수는 특히 "교수라는 사람이 쓴 글인데, 제자들이 제 글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조선일보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패닉 상태에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저를 갖고 논 것 아닙니까? 조선일보에 이용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요"

류 교수는 지인들과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당장 류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원본글을 조선일보의 글과 비교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맞서 지금으로선 류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 뿐이다.

<이재진 기자 besties@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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