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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두얼굴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복지공단이냐”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0. 10. 21.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복지공단이냐”

반올림과 유가족, 신영철 이사장 면담 요구하며 밤샘 농성 돌입

(참세상) 윤지연 기자

 

국정감사에서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근로복지공단의 공문은, 삼성 백혈병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삼성 백혈병 피해자의 행정소송을 삼성과 공동대응 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와 유가족들이 이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기약 없는 농성에 돌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사장님 스케줄 때문에...”

 
19일, 이종란 노무사와 유가족들은 신영철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근로복지공단 바닥에 주저앉았다.
공문을 본 뒤, 이사장 면담을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오고 싶어 하는 유가족은 많지만 그래도 대표를 고르고 골랐다.

약 2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규씨, 약 6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장애인이 된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 1년 4개월 동안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을 얻은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씨, 그리고 7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욱씨의 부인 정애정씨가 그 대표였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이 ‘뒷통수를 쳤다’며 분노했다. 그도그럴것이 지금까지 16명의 산재신청자 중 10명이 산재 불승인 됐다. 이 같은 판례를 보더라도 11월 심의를 기다리는 10명에게도 희망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과 근로복지공단 심사실에서의 불승인에 이어 노동부가 진행하는 재심사청구에서도 불승인을 받았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에 불복한 6명의 피해자 가족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불승인 판정의 남발도 기막힌 일이지만, 가족들의 행정소송에서조차 근로복지공단이 삼성과 공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족들에게는 더욱 기막힌 일이었다. 정애정씨는 공단 직원들을 향해 “저번에는 우리 얘기 1시간 동안 들어가며, 산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또 소송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놓고 뒤에서는 그런 공문을 보내고 있었냐”며 오열했다.


하지만 이사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이사장님도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사장실로 올라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에는 공단 직원들이 철벽을 쌓았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비상구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이종란 노무사는 “3년 동안 애걸복걸했는데, 한 번 쯤은 만나게 해줄 수 있지 않느냐”며 분노했지만 소용 없었다.


공문 작성 여부를 따져 묻는 유가족들에게 보험급여국장은 “나도 국감 날 처음 봤다”며 “이사장을 만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서 “이는 이사장도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 면담 요청하는 자세가 잘못됐다.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복지공단’...그들에게 ‘국민’은 곧 ‘삼성’

삼성의 로비가 있었냐는 유족들의 질문에 보험급여국장은 “우리 조직에 그런 사람 없다”며 “로비가 있었다면 내 배를 째겠다”고 강경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삼성의 공동행동 조직 사실이 드러나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벗어날 길이 없어졌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부 공문은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복지공단’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공문은 지난 1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이 산하 경인지역본부에 보낸 자료로,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삼성전자(주)가 보조참가인으로 동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송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판단됨을 감안하여 본부 관련 실국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소송 진행 중 특이사항을 보고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삼성은 근로복지공단의 승소를 위해 3대 로펌회사로 불리는 ‘율촌’ 소속 6명의 변호사를 대동한 채 소송에 참여했다.


사실상 법원 판결에서 유족들이 승소할 경우, 그동안 불승인을 내려온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암이나 백혈병 같은 치료비 부담이 큰 병을 산재로 인정했을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예산 부담이 따르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직업성 암 인정기준을 완화하면 재정적자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대해 이종란 노무사는 “환자들은 단돈 1000만원이 없어 치료를 못하는데, 공단은 매년 1조원의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예산 때문에 불승인 처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유족들을 비롯한 반올림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사장 면담 성사 시 까지 밤샘 농성을 지속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20일 저녁 6시 30분에는 근로복지공단 앞 집중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