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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는 언어다

장애속에 또 다른 벽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5. 10. 17.
"장애인에게도 소외받는 청각장애인들"
"장애 속에 또 다른 벽"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10-04 09:16:36

저는 얼마 전 제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또 다른 장애의 벽을 실감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참여했던 모임은 매우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이들은 물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안내견을 동반하고 온 사람,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누워서만 있는 분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침대휠체어를 타신 분도 보호자와 함께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다들 몸이 불편했던 만큼,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많았지요 행사장은 1층에 있어 들어오고 나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지만, 문제는 화장실이었습니다. 췰체어가 들어가기에는 경사가 급하고 턱이 높아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 시각장애를 가진 여자분은, 함께 온 일행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삐어 병원으로 가기도 했고, 자리로 들어가려는 휠체어와 나가는 휠체어가 통로에서 마주치면 그때마다 서로가 곤란을 겪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부분 일행이나 보호자가 있어, 조를 편성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들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과 함께 있기를 바랬고, 간혹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앉으면 굳어진 표정으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경우도,생기면서 운영진들이 난감해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자리에 식사가 마련되고, 술이 한 두 잔씩 돌아가면서,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이프와 포크 소리로만 가득했던 식탁에서 차츰 웃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행사 중간에는 각자 가지고 있는 전화기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습니다. 모임이 끝날 때에는 여기저기서 연락처를 주고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다들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자리에서 유독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앉아 있기만 할까?" 라는 생각에 다가가서 인사를 하며 말을 건냈지요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셨나봐요? 지금은 어색하시더라도, 사람들과 좀 어울려 보면 괜찮을 거에요."

하지만 저에게 돌아온 것은 "저는 청각장애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인사를 할 수 없어 답답했는데 반갑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여기에 남겨주세요" 라고 쓰여진 노트였습니다.

순간 저는 제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장애의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비장애와 장애인의 의사소통도 문제지만 같은 장애인으로서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던지요 저에게 처음 인사말을 써 준 사람은 자신의 일행들과 문자메시지로 연락하여 모임에 나왔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리는 것에 비해 그들은 일행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수화를 나누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임에 나와서도,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만나지 않는 이상,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 이외에 모임에 나왔던 다른 분들은 수화를 알지 못했고 구화(입모양을 보고 알아듣는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필담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수화를 통하거나 말로 하지 않는 이상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대화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모임에 다녀와서 간단한 수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봤더니 그리 많지 않고 배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홍보도 많이 되어 있지 않았고 말입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아닌, '많이 드세요' '반갑습니다' '또 뵈요' 등등의 간단한 수화라도 알 수 있어서, 수화를 통해 인사말을 했더라면,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인상이나 장애 등에 대해 자신들끼리 험담을 하며 웃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장애인이라고 불리면서도 자신보다 장애가 더 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놀려대는 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장애인 카페나 모임같은 곳에서도 청각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런 장애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모습이, 인터넷 카페의 모임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났던 일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느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청작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훨씬 더 각박한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애 속에 또 다른 장애를 본, 쓸쓸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 하루였습니다.

*정현석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이자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정현석 기자 (dreamgmp@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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