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면 하나이지만 여럿이 하면 여러개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우리는 다양성이라고도 말을 하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존중하자고 말하며, 사령관은 '구동존이'라고 말하는 등 어쨌든 비슷하게 말을 하지만 해석 또한 제각각이다. 이를 서로 나무라며 비판하거나 도를 넘어 비난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제각각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말하며, 목소리도 다르고, 키도 다르며 덩치도 다르고 거시기도 제각각이며 힘도 다르다. 남과 여도 틀리다. 당연히 생각도 다르며 행동도 다르다.
그러나 그건 사람끼리의 비교라면 인간을 원숭이와 소, 말, 돼지, 닭, 개.........등등과 비교해본다면 인간은 인간끼리 너무나 닮았다. 더 넓게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본다면 인간끼리는 틀린 것 보다는 같은게 너무나 많다. 이를 우리는 인간의 동질성이라고 배웠다.
특히 가진게 없이 일해서 벌어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그 처지와 생활이 너무나 흡사하고 닮아가며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행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뭉쳐서 싸울 수 밖에 없다.
그건 배고플 때 이야기인 것 같다.
18년이나 굴러먹은 양파가 있다. 양파를 음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맨 위의 껍질을 벗기니 흠집이 보인다. 멍들고, 터지고, 상처받아 허물어진 양파를 먹기 위해 한꺼풀씩 벗겨내고 벗겨내며 하얀속살을 기대하며 계속 벗겨 낸다. 결국 손에 남은 양파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진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 남의 흉허물만 보인다.
혁신은 양파껍질의 논리가 적용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청산'하고, '나로부터 혁신'을 약속했었다. 우리는 그 정신을 버려서는 혁신을 성공할 수 없다. 남을 혁신하기 앞서 나부터 혁신할 자세와 정신상태가 도달해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자신부터 혁신활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들이 믿고 따르기 마련이다.
아직은 그런 모범이나 활동을 통해 조합원 대중의 신뢰와 신망을 획득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으면서 조합원 대중들의 신임을 목말라 하는 것은 과욕이며 욕심이고, 이미 혁신은 물건너 간 다른 방식의 정파활동이며, 현장조직으로 나타날 것이다.
조합원 대중들이 경계하고, 현장의 활동가들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여준 것도 없으면서 조급증을 내고 서두르며 혁신을 욕심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혁신은 과거에 얽메이지 말아야 한다. 혁신은 새로운 미래이며, 새로운 전망으로 나타나야 한다.
낡고 썩어빠진 운동을 파괴하고 깨부수는데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그 수렁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우리 혁신단원들의 사고가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지를 가늠해보면 70:30 정도로 과거에 얽메여 있다. 그러기에 답답하고 혁신에 대한 전망이 안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한 목표와 방향대로 똑바로 가면 된다. 그런데 아직 혁신단은 혁신의 목표와 방향을 통일하지 못해 혼선과 혼돈을 느끼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건 어려운게 아니라 토론을 통해 수위와 속도를 조절하면 된다.
1월 11일 혁신 방향과 목표에 대해 모두가 모여 수위와 속도를 합의하고 통일하면 이젠 행동만 남게 된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우리끼리의 차이를 발견하고 찾아내며 부각시키는게 아니라 함께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동질성 회복이 최우선 과제이다.
단지 조건이 있다. 과거는 30이요, 미래는 70이라는 점이다. 남에게는 30이요, 나에게는 70이라는 혁신비율을 정하면 된다.
나 자신이 혁신할 자세나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서 남을 혁신하려 들지 말아야 된다.
나로부터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개짓거리를 일삼으며 남에게 공자 촛대뼈 까는 소리 해보았자 혁신단은 세상의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남의 탓을 하지말고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활동가로의 변신이 혁신단원들이 보여야할 모범이다.
지금 노동운동은 썩어 있다.
썩었다는 것은 지금 나타나는 비리나 도덕성만이 아니다. 변혁성의 상실이 노동운동의 전망을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집단주의가 무너지고 각자가 알아서 자본의 치맛폭에 숨어 편하게 활동하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그게 노동운동 위기의 본질이다. 노동해방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나만이라도 알아서 살아가자는 개인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치게 만들었다. 그것 또한 노동운동을 책임져야 할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자본가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노동 대중이 등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대중들을 원망하거나 탓할 필요가 없다.
활동가들이대중들에게 신망과 신뢰를 상실한 원인이 있다면 그것만 충실하게 해결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고 다시 믿음을 구축할 뭔가를 실제로 보여줄 때 관계는 회복될 것이다.
나는 이 출발점을 '도덕성 회복'으로 보고 있다.
남들이 말하는 도덕주의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다음의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고, 그렇게 해서는 '쪽팔림'을 아는게 바로 도덕성 회복이다.
도덕성의 회복은 진실된 행동과 정의로운 실천으로 나타난다.
이 사회의 진실과 정의가 넘치는 건 결국 개개인의 의식혁신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혁신이 어렵고 힘들며, 혁신세력이 조그마한 권력을 차지한다손치더라도 곧 작은 결함에 혁신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게 혁신의 역사였으며, 결과는 실패로 나타났다.
그러기에 혁신세력은 자신들의 도덕성 회복이 가장 중요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을 100% 투명하게 조합원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감시 당하고 견제 받는다는 자기혁신의 자세가 아니라면 한두명의 실수로 혁신단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혁신단의 도덕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도덕성 회복은 우리 자신에게 채찍질이 되어야 하며
노동운동의 혁신은 미래에 대한 목표와 전망을 세우고 우리가 힘을 합쳐 그 길로 내달리면 된다.
과거에 얽메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혁신단'이 되어야 한다.
11일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10가지를 간추리고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과제로 나눈다면 우리가 10년을 해야 할 과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혁신은 몇가지 이벤트나 히트작으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조급증을 내지말고 우리는 지켜보는 조합원 대중을 생각하며 혁신의 우선순위를 정해보자.
솔직히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하는게 문제 아닌가?
가장 쉽고 가능한 일부터 찾아내서 실천해보자.
그게 바로 혁신이다.
노동운동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짓은 자본가 논리이며, 자본가는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개인을 분할지배관리하며 서로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만든다.
노동운동이 변혁성을 상실하면 자본가보다 더 더러워 지는게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본령은 '평등과 연대' 정신이며, 이게 노동해방 정신이다.
조급증을 내지 말자.
18년의 묵은 때가 유인물 한두장으로 해결될 것을 기대하지 말자.
우리가 내세운 2006년 1월의 혁신투쟁 목표라도 어떻게 충실하게 수행할지 고민하고 실천하자.
작은 것도 못하면서 큰 것을 꿈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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