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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전망IN

노동운동 위기의 진단과 극복의 방향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11. 15.

노동운동 위기의 진단과 극복의 방향



서울노동광장 대표 이춘자



위기를 진단하기에 앞서 먼저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소위 활동가들의 1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통감합니다. 광장이 비록 출범한 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이런 책임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노동조합운동 1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던 민주노조가 민주노총으로 통일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7년초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외연은 철도, 공무원 등으로 계속 확장되었고 한국노총의 민주화 가능성까지 예견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또한 민주노조운동의 오랜 여망이었던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첫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위기의 수렁 속에 깊숙이 빠져있다.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으며 단결의 구심은 쉽게 확보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적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중심계급으로의 역할이 뚜렷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근본 요인은 계급해방의 전망을 상실한데 있다.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적어도 현장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 진단에서는 다양한 각도와 수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활동가들의 사상적 위기 즉 변혁성 상실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를 역사적으로 되짚어보자.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관념적이고 투박할지언정 활동가들은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분명한 지향을 갖고 있었다. ‘노동해방’ 구호는 이러한 지향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중국의 시장경제로의 전환, 북의 경제 위기 등 사회주의운동의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면서 사정은 급변하고 말았다. 많은 활동가들 사이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가 지극히 공허한 것으로 비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활동가들이 머리 속으로는 자본주의 극복을 변함없는 자신의 목표로 삼았지만 대중적 구호로 전환하는 데는 명백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이 상실된 조건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이익 증대에 골몰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전체 계급의 이익보다는 눈에 보이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일시에 노동해방 구호는 사라졌고 자본과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던 도덕적 긴장감도 극도로 해이해졌다. 조합 간부로의 진출은 활동가들의 삶의 목표가 되면서 서로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다툼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위기는 첫 번째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발생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리해고제 도입에 민주노총 지도부를 포함한  민주노조 진영이 동의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조합원 입장에서 볼 때 정리해고 동의는 노조가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합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직장에 몸담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공장의 서로 다른 부서가 일감을 갖고 다투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사정이 이러한데 전체 노동계급의 처지에 관심을 돌릴 리 만무하며 노동계급의 총단결 구호가 현실감 있게 다가갈 리 없었다. 이는 노동운동이 아래로부터 붕괴되는 신호탄이었다.


세 번째 위기는 앞서의 두 번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서 최근에 발생했다.  기아자동차 취업비리 등의 사태로부터 촉발된 노동운동의 위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언제 터지는가의 문제였을 뿐이다. 주요한 것은 기아자동차 노조의 문제는 지극히 단편적인 현상이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이  전체 계급의 이익을 외면한 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체질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부 대공장에서 투쟁의 성과가 쌓이면 쌓일수록 노동자 내부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그에 따라 계급적 단결은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모든 문제의 뿌리는 첫 번째 위기를 초래한 위기 요인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데 있다. 즉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을 포기하고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운동으로 변질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노동진영은 미래의 전망을 다루는 사상전에서 패배하고 있다.


삼성 엘지 등 자본 진영은 한국사회 10년의 전망을 쏟아내면서 국민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들이 토론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에 걸친 문제이며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문제들이다.

예를 들면 삼성경제연구소(약칭 세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15년 10대선진국 진입전략은 삼성식 ‘10년의 전망’을 담고 있으며 엘지경제연구원에서 출간한 ‘2010년 대한민국 트렌드’는 엘지식 미래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진영은 어떠한가. 활동가들의 일상적인 토론 주제를 통해 가늠해 보자. 대부분의 경우 활동가들의 일상적인 토론 주제는 각자의 사업장 혹은 업종에 국한되어 있으며 미래의 전망 문제보다는 당장의 현안 문제에 치중해 있다.


변혁은 그 자체로 미래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온라인 사이트이든 출판계이든 미래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압도적으로 자본진영이다. 대형서점 미래학전문코너를 채우는 서적은 대부분은 자본진영에서 나온 것들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전망을 다룬 일부 번역 서적을 제외하면 진보진영에서 나온 미래학 서적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조건에서 다수 국민들은 미래의 전망 문제에 관해 자본의 교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중의 사상의식을 자본이 틀어쥐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모든 투쟁의 기본인 사상전에서 진보진영이 패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정체와 퇴보를 드러내는 징표들


1> 학습체계가 붕괴되면서 활동가들의 육성이 지체되고 있다.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운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활동가 육성은 노동운동 발전을 가늠하는 첫 번째 징표이다. 하지만 1990년대 접어들어 학습체계가 전반적으로 붕괴되면서 새로운 활동가 층이 육성되고 있지 않다. 많은 사업장에서 10년 전의 활동가 지형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에 각축전을 벌였던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집행부를 맡고 있는 양상이다.


2> 중심 부대에서의 기득권 의식 형성

무언가 지켜야할 것이 있고 지키는 것이 중심이 되면 그것은  변혁과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인가. 바로 지켜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때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했던 대공장 노동자들이 극도로 변질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기득권 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면서 노동계급단결의 무대가 되어야 할 현장은 생존의 아귀다툼을 벌이는 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계급의식과 양립할 수 없는 기득권의식과 경쟁의식이 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3> 패배할 가능성이 많은 수세적이고 피동적인 투쟁

변혁적 투쟁은 공격적 이슈를 제기하고 미래의 비전을 중심으로 대중을 조직 발동하는 것이다. 토지개혁, 주요산업 국유화, 8시간 노동제, 인민정부 수립 등은 과거 변혁운동에 등장했던 대표적인 구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구호는 구조조정 반대, 비정규직 차별 철폐, 신자유주의 분쇄 등 대부분 자본진영이 도발하면 그에 반대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철저하게 수세적이고 피동적 투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떤 투쟁이든 공세적이고 주동적 입장에 서면 승리를 보장받고 반대로 수세적이고 피동적 입장에 머물면 패배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진영의 투쟁은 처음부터 패배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기 해소의 방향은?


1> 다시금 노동해방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변혁운동은 주체성의 회복 즉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면서 시작된다. 노동계급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지향을 포기하는 순간 변혁성은 사라지고 만다. 남는 것은 초라한 몰골을 한 자본의 노예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점을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신자유주의를 넘어 노동자가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 건설(노동해방)을 내걸어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란 쉽게 말해서 기업과 국가 수준에서 주도권(권력 혹은 헤게머니)이 노동자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보면 대자본 정책과 시장 경제 문제 등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2> ‘학습과 토론을 위한  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구축해야 한다.

학습과 토론은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다. 학습과 토론이 선행되어야 각성된 활동가가 육성되고 대중을 향한 선전 선동을 수행할 능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개별 혹은 소그룹단위로 체계적인 학습과 토론을 조직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당장 무엇을 학습하고 토론해야할지 쉽게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학습할 꺼리가 즐비했던 과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학습과 토론에 필요한 컨텐츠 개발팀을 정교하게 구축하고 생산된 결과를 온라인을 통해 공급하고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다. 이슈를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해석해주면서 자발적인 토론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컨텐츠 개발이야말로 노동운동이 해결해야할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만드는데 있어서 진정 ‘연대’의 의미를 살려 모든 지혜가 모여져야 할 것이다. 


3>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정치선동을 일상 현장활동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학습과 토론을 통해 소화된 내용은 노동대중 속에 폭넓게 전파되어야 한다. 즉 정치선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며 단순명료한 정치선동의 수행이야말로 노동조합을 정치부대화하고 노동계급을 영도계급화하는 필수 요건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자기 살을 파먹으면서(성장동력을 파괴하면서)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들고 있음을 생생하게 폭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거부를 조직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던져진 이슈들 예컨대 공공자본의 운영 방향, 신고용 모델 창출, 민주적 기업의사결정 구조 등을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제대로 해석해 줌으로써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충분히 열어나갈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이와 함께 북미대결 역사를 해설함으로써 통일을 통해 계급해방의 길을 열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4> ‘비전 중심의 공세적 투쟁’,  ‘승리하는 정치투쟁’을 통해 변혁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정치선동의 성과는 ‘비전 중심의 투쟁’을 통해 빛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중심의 투쟁은 승리하는 정치투쟁으로 집중되고 결실맺어야 한다.

민중이 진보진영을 정치적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정치투쟁을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할 때이다. 즉 투쟁을 통해 정책 역량, 동원력, 여론 장악력 등 모든 점에서 기존 권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입증할 때 민중은 주저없이 진보진영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혁운동이 머금고 있는 모든 역량은 몇 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라도 단 한번의 승리하는 정치투쟁을 조직하는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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