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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는 언어다

'농인'에 대한 용어......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7. 4. 13.

농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용어를 하루빨리 청산하여야 한다.

용어의 관점에 있어서, '청각장애인'이나 '농아인'이라는 말보다는 '농인'이란 용어를 쓰는 자세가 농인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그것은 농인의 주권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요즘 학계에서는 새로이 거론되고 있는 '의사소통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는 청각장애를 수반한 모든 사람들을 그 대상 범위 안에 포함하게 되어 있다.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일반사회 활동에 있어서 상당히 불편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나, 농인들에게는 진정 '의사소통장애'가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수화는 언어의 기능면에서 아무런 결함이 없으며 농인들은 수화로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째서 청각장애를 수반한 농인을 일방적으로 이들 범주 속으로 엮어낼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농인이 쓰는 수화를 병리학적 관점에서 찾으려는 국내학자들의 안일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선진국의 학술서적이나 논문에서는 '농아인' 또는 청각장애' 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귀먹은(deaf) 사람 즉, 농인의 용어를 택해 기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학술지에서는 귀먹은(deaf) 사람을 한국 말로 충실히 번역하여야 되는데, 이것이 잘못되어 '농아인'이나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심각한 언어적 횡포인가?

지금까지는 귀먹은 사람을 귀멀고 말도 못하는 사람, 즉, 농아인으로 널리 지칭하고 있는 데, 그것은 병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당연하다 하겠으나,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는 분명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겠다.

귀먹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언어로서의 수화가 존재하고 있는 바, 이를 굳이 벙어리 아(啞)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벙어리 아(啞)가 귀먹은 사람에게는 진정 없으며, 분명코 농인에게는 언어가 있으며 그것은 바로 빛과 어둠의 조화에서 빚은 영상언어인 수화이다.

이 수화를 사용하므로써 우리는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니며, 농인은 말 대신에 손으로 쓰는 영상언어를 사용하는 것 뿐인데 수화를 언어로서 인정해 주지 않고 상호간의 의사전달이 전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 이를 굳이 벙어리라고 말함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농인을 청각장애인이나 농아인으로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농인으로 그 용어가 통일되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청각장애'라는 용어는 청각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판별하는 데 있어서 아주 편안한 것임에 틀림없으나, '장애'라는 말은 농인에게는 없다는 사실이다. 장애라는 말은 일종의 장벽, 방해물, 걸림돌 심지어는 마음의 병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수화를 사용하고 있는 농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장애' 라는 말은 너무나 구시대적이고, 시혜적이며 병리학적인 복지정책에서 나온 오만무도하고 사악한 용어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청인과의 차별화 정책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겠다.

농인이 수화를 나의 언어로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 마당에 말의 장난이 되어 버린 '장애'라는 표현에 위축을 느끼는 농인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81년 '세계 장애인의 해' 이전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 가고 싶은 기성세대인 농인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 농인협회에서 'You are Deaf, NOT hearing impaired(여러분은 농인이다. 청각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널리 쓰여지고 있어 미국 농인들은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지 너무나 오래 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도 언론기관이나 학술대회에서 한결같이 '장애인'이라는 말들이 함부로 사용되고 있으며, 급기야는 고착화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러한 용어는 하루빨리 청산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서울농학교총동창회 글 : 장진권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