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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협회

"수화(수어)통역사란? 누구인가!"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7. 4. 6.

 

 

<페북에서 퍼온 글>

 

"수화(수어)통역사란? 누구인가!”

 

문제제기

수화(수어)통역을 배울 때, 통역은 투명한 창과 같아야 한다고 배웠다. 내용의 가감없이 전달을 해서, 마치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 어디까지나 제 3자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통역을 해야된다고 들었다. 그동안 통역사는 통역에서 오는 부담감과 준비 등을 위해서 30분씩 교체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배웠다. 지역 사회 내에서의 통역에서도 그러한 시간을 보장해주었으면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 통역 현장에서 농인들은 정보 이상의 통역을 요구할 때가 많다. 우리가 배운 통역의 범주와 기준을 초과하여 요구하고 있다. 통역서비스 평가를 해보면 농인들은 불만족에 손을 드는 반면에, 청인은 통역의 기준을 초과했다고 한다. 농인들에게 있어서 통역이 정보 전달에 그칠 경우, 실력없는 통역사로 낙인찍힌다. 선택과 결정은 어디까지나 농인 스스로의 몫임에도 통역사는 해결사의 역할까지 요구당할 때가 많다.

 

현장에서 수화통역사들이 제공하는 통역의 수준은 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는 반면에, 서비스를 받는 농인들은 의미 전달자의 수준의 역할로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제공 역할을 넘어 어느 정도의 조정의 역할까지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농인은 본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분야의 경우 더욱 수화통역사의 역할 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화통역사의 만족도는 어떠할까? 역할 기대수준과 역할 수행 인지수준의 차이가 증가할수록 직무만족도가 낮아진다. 반면에 다른 업무 없이 수화통역만 하는 경우가 가장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수화통역시간은 하루 3-4시간을 하는 경우가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 소득 역시 높을수록 직무만족도가 높아진다.

 

현장에서 통역사는 배운 바와 같지 않음에 괴리감을 느낀다. 게다가 이러한 일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는 것을 상사는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일한다는 것은 참 고역이다.

 

직무의 괴리감

수화통역센터라고는 하지만, 통역에 대한 직무훈련은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그리고 센터 안에서의 통역사는 농인의 심부름꾼(종)이 되어가는 것 같다. 청인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센터에 근무하는 청인에게 푼다.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하여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여기서만큼은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말이다. 그 뿐만 아니다. 이제 통역센터에서 수화전문이 아니라, 사회복지업무를 맡아 언젠가는 사례관리(Case management)를 해야 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수화통역사의 위치

재활복지의 패러다임 가운데 당사자(소비자: Consumer)로서의 개념은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로서의 수화통역사는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하기도 어렵거니와 준비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통역사에 대한 인권이나 예의를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것을 앞서서 챙겨주어야 하는 관리자 역시 농인이기에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기껏 하소연하는 자리라고 해봐야 수화통역사 보수교육의 밤샘 토론(?) 시간이다.

 

우리 수화통역사는 현장에서 이렇게 지낸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잘못한 것일까? 누구에게 이 괴리감과 괴로움을 토로해야하는가? 들리지 않는 농인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농인을 잘 모르는 청인들을 대상으로, 그 사이에 끼여버린 수화통역사는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통역센터의 한계

물론 수화통역사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회사라는 조직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통역에 대한 트레이닝과 피드백을 통해서 성장해 가야한다. 이것이 조직의 특성이다. 그런데 센터에 근무하면서 늘어가는 것은 메말라버린 성정(性情)이 아닐까 한다. 무기력과 좌절감에,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다.

 

수화통역사의 직무만족도에 대한 연구를 보면, Swartz(1999)은 자율성, 통역시간, 교육, 감독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직무만족도에서 교육은 26%를 차지해 통역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그 외 자율성, 작업시간, 감독은 전체 가운데 3%로 나타났다.

 

수화통역사들의 가장 불편한 점으로는 전문가로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 보수 등을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수화통역사를 해결사로 바라보는 농인들의 의식 또한 불편한 점으로 꼽고 있다.

 

농인이 공감하기 어려운 통역의 세계

사실 우리 주변에는 수화를 잘하는 농인은 있어도 통역을 모르는 농인이 대부분이다. 기껏 국제수화나 미국수화 등을 할 줄 아는 농인들에게서 우리와 같은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다. 앞으로 갈 길이 요원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해서 머물러버리기에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 하루에 많은 변화가 아니더라도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 성장해가는 모습,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인권,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통한 지지와 협력을 기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지 않겠는가?

 

통역사의 역할과 위치

오늘 그 가운데 통역사의 역할과 관련하여 얘기해보고자 한다. 보통 통역에 대해서 배울 때 2원 1위(dyad)의 통역을 하라고 한다. 청인 옆에 서서, 청인의 얘기를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농인 입장에서는 청인의 입모양, 표정, 제스처 등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문헌에 따르면 2원 1위의 통역 모델에서 통역사의 중립성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수화통역사가 제 3의 대화 중재자로서 대화를 중재했을 때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한다.

 

3원 1위의 통역 위치

3원 1위(triad)의 관점은 수화통역사가 대화에 영향을 주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통역사는 농인과 청인 사이의 단순한 중재자의 역할을 넘어서, 독립적인 주체로서 의사소통의 촉진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3원 1위의 관점에서 수화통역사는 독립적인 주체로서 대화자들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1984년 미국의 미시건 메도나 수화통역 지도자 컨퍼런스(Confrernce of Interpreter Trainers)이후 나타난 수화통역사의 역할은 수화통역사의 존재가 피동적으로 농인과 한 쌍을 이루는 2원 1위로서가 존재가 아니라, 제 3의 존재로서 대화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인 3원 1위의 존재라는 인식이 확인되었다.

 

자리 배치의 경우에도, 농인과 청인이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통역사는 농인 쪽이나 청인 쪽에 위치하는 대화의 양상을 벗어나, 세 사람이 삼각형을 이루는 자리의 배치가 수화통역이 보다 나은 상호작용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통역의 프로세스와 역할

흔히 2원 1위의 통역을 통해서 화자의 의도를 통역사의 주관을 배제한 체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통역 자체가 전달자의 의도가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Seleskovich, 1978). 통역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가지 문맥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자의적으로 해석이 되며, 해석된 정보가 인출되는 과정에서도 통역사의 어휘사전을 바탕으로 선택하여 산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화통역사의 자의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우며, 자의성의 배제만을 통역사의 의무로 강조하기보다는 관련지식의 풍부함을 수화통역사의 역할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통역의 방향 1: 통역과 바우처

선택에 따른 정보(장점, 단점 등)을 제공하지만, 선택은 농인의 몫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통역에 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농인이 바우처를 사용해서 통역사를 선택하고 시간만큼 통역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도 많은 찬, 반의 내용들이 있지만, 적어도 고객(농인)은 변화될 것이고, 수화통역사 역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통역의 방향 2: 세밀한 통역

농인들은 어떤 통역사를 잘하는 통역사로 치켜세우는가? 아니면 적어도 중간정도로 보는 이들의 공통점은 표정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표정만 리얼해도 70%는 먹고 들어간다. 수화 단어가 조금 틀리고 엉성해도 얼굴에서 확실하면 뜻은 전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농인들의 삶의 수준이 올라가고, 지적 호기심을 비롯하여 고학력 시대가 오면서, 표정만으로는 더 이상 전달이 어렵다.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통역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선배 통역사들에게 간간히 물어가며 답을 얻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농인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것은 요원하다.

 

이제는 전문적인 기관이 필요하며, 통역을 전문적으로 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통역사로서의 전문성, 자존감은 실력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 그리고 열정들이 모여서 큰 변화가 아닌 적은 변화를 목표로 땀을 흘렸으면 좋겠다. 땀과 연습은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후에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들로 인하여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돛을 맨 밧줄을 풀러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

 

*참고문헌

박은영(2005). 수화통역사의 활동실태와 만족도 조사.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특수교육전공 석사학위논문.

김연신(2012). 수화통역사의 역할에 관한 연구: 수화통역의 영역과 수화통역사의 역할 수준을 중심으로.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원성옥, 강윤주(2007). “수화통역사의 직무 특성과 만족도 분석연구”.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제8권 2호, p.71-89.

서창원(2008). “수화통역에서 3원 1위(Triad) 관점으로 역할변화에 대한 이론적 분석”. 장애와 고용. 제18권 제2호 p. 117-134. 참고.

Seleskovitch, D.(1978), Interpreting for international conferences: problem of language and communication , Silver Spring, MD: RI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