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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노동자 투쟁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7. 5. 24.

신자유주의와 노동자 투쟁

 

민주노총(제4기 노동자학교)

 

‘신자유주의’하면 정리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증가를 대표적으로 떠올릴 것이다.

발전노조, 철도, 가스의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 전교조의 NEIS 반대투쟁, 경제자유구역법 반대투쟁, 주5일제법안 개악 저지 투쟁, 최근의 반전·반세계화 투쟁까지 이제는 신자유주의 반대와 노동자투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떤 배경으로부터 출발하고 전개되게 되었는지 신자유주의 본질과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중요성을 확인해 보자!

 

1. 자본의 위기가 오고 곧 위기극복을 위한 시도를 한다.

 

1) 공황이란?

○ 공황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자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노동자 민중들에게 되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더 착취해서 이윤을 확대한다.

☞ 계획생산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생산은 이윤이 확보여부에 따라 생산이 결정된다. 빈곤한 노동자들의 소비력은 한계가 있는 가운데 이윤이 많은 상품생산을 향한 자본의 경쟁은 무제한적인 생산력의 확장을 초래하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한계 이상의 생산의 과잉상태를 만든다.

○ 과잉생산은 자본에게 적당한 이윤율이 확보되지 않고 이윤율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과잉자본이 발생하여 금융위기가 오게 된다. 자본의 일부 파산과 생산의 중단(감소), 실업률 급상승, 주식과 물가는 폭락한다.

○ 생산의 부문간 불균형, 생산과 소비간의 충돌, 과잉생산, 이윤율의 저하를 필연으로 유발하고, 이러한 모순이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누적, 격화되어 폭발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공황이다.

○ 이러한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공황이 전형적으로 격화된 형태가 1930년 대공황이었고 다시 격화되고 있는 것이 1970년 이후이다

 

2. 자본주의 세계경제발전 과정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군수산업의 독점화와 전쟁, 노동자에 대한 착취수단 강화를 추진해 왔다. 세계 자본주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알아보자!

■ 1기(1789~1870~1년) : 초기 산업자본주의 형성

1789년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한 대규모 공장이 발전하여 공장제도를 확립시켰고, 공장의 도시 집중을 초래한다. 영국을 선두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의 발달로 전 세계는 자본주의화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 속도는 나라마다 달랐다. 초기 자본주의는 60여년 간 영국만을 선진공업국으로 하고 다른 나라는 농업국이라는 국제 분업관계가 유지되었다. 그 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후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계제 대공업이 발전한다.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주의 이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데 이는 시장과 시장에서의 경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제적 재생산과정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두면 만사가 저절로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봉건적, 절대왕정의 억압과 개인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저항과 그로부터의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해방을 대표했던 사상과 체제였다.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면서 공황도 세계공황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초의 세계적 공황은 1857년 일어났다. 그 당시 공황은 큰 파급력이 없었으나, 1873년 대 공황은 20여년 간이나 지속되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고 이 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 2기 (1871~1917~8년) :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 - 제국주의 단계로 성장 전화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후발 자본주의국들은 1873년 공황을 맞이하여 자본이 급격하게 독점해 간다. 기술의 발전과 주식회사의 설립, 은행으로 자본의 집중을 강화한다. 주식소유자들이 소유권을 독점하도록 하여 독점자본주의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상품수출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시기 세계 자본주의 중심축도 영국에서 미국과 독일로 이전되었고, 산업 구조도 기술 혁신에 따라 경공업에서 중공업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대량생산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생산으로 거대해진 기업들이 독점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독점자본에 의해 이 시기부터 자유경쟁의 의미는 사라진고 국가는 자본의 독점형성을 돕는데 나서기 시작한다.

○ 식민지 분할을 통한 제국주의간의 대립이 격화

독점 형성은 산업과 은행의 결합을 필연적으로 만든다. 거대기업은 고정자본에 투자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은행은 금융자본으로 발전한다. 금융자본과 결합한 독점자본은 투자시장, 판매시장, 원료자원의 확보를 위해서 독점의 세력 범위를 확대하는 세계적 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다. 이로 인해 국제적 독점간 투쟁이 시작되고 세계시장을 분할 지배하는 경쟁 심화된다. 결국 세계기장 분할 지배 경쟁은 영국을 선두로 세계의 영토 분할, 자본주의 국가 간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자본주의 국가 간의 식민지 획득경쟁, 재분할경쟁이 심화되면서 제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생산력이 파괴된 유럽은 타격을 받고 영국 중심의 세계체제는 무너진다.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연합군에 차관공여와 수출을 늘린 미국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 전쟁으로 인한 민족주의적 동원으로 민중들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서게 되면서 차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물결친다. 자본주의 내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간의 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이다.

■ 3기 (1918~1970년) :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전환

반독점,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대되고 러시아 혁명에 의해 각 국의 혁명운동은 고양되기 시작한다. 민족해방투쟁으로 인한 식민지체계의 위기와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인한 사회주의 성립으로 시장이 축소되면서 자본주의 모순이 확대, 격화되어 세계사상최대의 1930년 과잉생산공항이 발생한다. 이 공황에서의 탈출의 길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에서 찾는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에 의한 직접적인 경제개입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독점조직과 융합하고 독점조직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가는 독점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로 한다. 이는 독점자본이 국가를 직접 지배하고 이용하여 높은 독점이윤의 획득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한 특징은 기간산업의 국영화로 국영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하여 독점자본들에게 원료, 반제품, 서비스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1930년 대공황은 독일, 일본처럼 파쇼체제를 탄생시키고, 미국에서는 국가의 통제 하에 독점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뉴딜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고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제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발발이다.

○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 새로운 사민주의(케인즈주의) 탄생

2차대전 후 사회주의권이 탄생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개의 세계 시장이 탄생하고 식민지체계의 위기가 한층 격화된다. 구식민 체계는 전면적 붕괴과정에 돌입하고 미국의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식민지 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특징은 첫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의 군사화를 중심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현대자본주의에 항상적 체계로 발전한다. 둘째는 국가의 시장경제 적극개입을 통한 사회보장제도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케인즈주의가 대두된다.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사민주의 정책이 펼쳐진다.

♠ 케인즈 주의 ♠

경제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주의권 대두로 자본주의 시장의 45%가 줄고, 전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초토화되었다. 이 때 고전적 자유주의 퇴색 이후 나온 이념이 바로 ‘유효수요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케인즈주의이다. 불평등이 너무 심화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시장경제에 제한적으로 개입하여 완전고용, 사회보장 등을 추진하여 수요를 확장하는 것(노동자들을 소비자로)이다. 케인즈주의를 바탕으로 사민주의 정책이 발전하게 된다.

■ 4기 (1970년대 현대불황~현재까지) : 신자유주의 -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자본축적 토대 위에서 30여 년의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2차례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다시 심각한 경기불황(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지면서 다시 이윤율 저하의 위기(경제위기)가 도래한다. 다시금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인 신자유주의이다.

 

3.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의 위기,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 이념이다.

 

1) 신자유주의 등장 배경

① 70년대 중반부터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심각한 구조적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브레튼우즈 체제(IMF체제)의 위기,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구조적 불황의 원인이 국가의 지나친 개입, 즉 관료주의와 이윤원리의 침해, 사회복지의 남용, 자유로운 시장의 훼손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케인즈주의, 사민주의를 비판하고 결국 시장으로부터 국가개입을 축출할 것 요구한다.(그러나 실제로 국가개입을 완전히 축출하지는 않는다. 국가개입의 방향이 군사수요를 증대하는 쪽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다시금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주장하는 이념이 확대되는 것인데 이것을 신자유주의라 한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무한경쟁을 추구한다.

② 신자유주의는 개방화(세계화), 규제완화, 공공부문의 시장화(개방화·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등을 통해 관철해 나간다.

자본가들은 과세도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해치는 억압이라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정권을 내세워 독점기업을 위한 감세조치를 하게 되고 이는 사회복지 예산의 감축으로 나타난다. 축소된 사회복지와 공공부문을 시장화하고, 대외적 개방 확대로 상품서비스, 자본, 금융은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이렇게 자본의 경쟁이 격화되고 모순이 심화될수록 노동자에 대한 착취수단은 강화되는데 그것이 노동의 유연화이다.

③ 신자유주의는 거대 독점체제(초국적 기업), 금융체제(세계금융시장)가 더 이상 국가와 노조의 개입을 받지 않고 국가나 민족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④ 신자유주의는 불황의 부담을 내국의 노동대중 및 제3세계의 노동자, 민중에게 폭넓게 전가시키려는 자본위기의 해결책이다.

⑤ 80년대 초 영국의 대처리즘, 레이건이즘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영국 대처리즘의 노동정책 - 노사관계를 탈 노조화 하는 것이다.

1979년에 집권한 대처수상은 1980년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크게 제약하는 노동법을 개악한다.

- 80년 파업 시 허용되어 오던 파업이탈자 감시요원, 즉 피켓팅의 면책 범위를 축소.

- 90년에는 다른 고용주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체행동, 혹은 다른 노동자들에 의한 연대지원파업 등 2차 단체행동을 금지. 파업에 불참 조합원을 노조가 제재할 수 없도록 조합원의 파업거부권을 법으로 명시

- 93년에는 단체행동에 의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제정. 단체행동에 돌입하기 1주일 전에 사용자에게 단체행동의 범위와 기간을 통보.

- 94년 영국 고등법원은 사용자의 요구 시 노조는 파업투표에 참가한 노동자의 이름과 주소를 제출해야한다는 치욕적인 판결까지 내림

- 노조활동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클로즈드샵의 폐지와 노조비 원천공제체계의 금지조치였다.

○ 84년 대규모 광산 노동자 파업

- 광업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1년 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 물질적 힘을 동원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나 다른 산업부문의 노조나 사회의 진보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동원해 내지 못함으로써 광업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영국의 광업노조가 무너지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과 노동당은 쇠퇴, TUC의 정치적 분화가 가속화되어 TUC내 대다수가 대처정권과의 협상에 찬성하게 된다.

 

4. 한국의 신자유주의 도입

1) 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전에는 병영적 통제 방식이었다.

미국, 일본에 종속적인 한국경제는 당연히 세계공항에 직접적 영향을 받아왔다. 미국, 일본 등 세계 강국 자본의 이윤율 저하의 위기는 끊임없이 한국경제의 위기로 나타났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자본은 산업역군이란 미명하에 노동자에 대한 절대적인 착취를 강화해왔고, 이를 위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자본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려먹고 많은 이윤을 축적하는 병영적 통제방식을 유지해왔다.

2) 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에는 유연화 전략으로 변화되었다.

(1) 87년 노동자대투쟁은 그동안 병영적 통제 방식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후 자본가들은 병영적 통제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통제 방식을 변화시킨다. 89년부터 대기업내에서는 경영혁신운동(신경영전략)을 추진하는 데 이것이 바로 노동의 유연화 전략으로의 선회이다.

(2) 89년부터 기업 내부에서 조금씩 신경영전략을 확대 추진해온 자본은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로 독점재벌 위주의 정책을 편 노태우 정권을 통해서 90년부터 끊임없이 근로자파견법 입법을 시도했고 92년 경총은 적극적으로 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노동운동은 ILO 공대위를 구성하여 투쟁으로 막아냈다.

3) 세계화 전략을 표명한 김영삼 정권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1) 김영삼 정권은 본격적인 국가차원의 신자유주의 유연화 전략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한다. 우선 ‘신노사문화’라는 이름으로 기업내부의 경영혁신운동을 지원하고 노사관계에 대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

♠ 신노사문화 ♠

각종 교육, 사내 써클 지원, 각종 문화행사 개최 등으로 기업문화를 바꾼다는 운동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투쟁하는 과정에서 의식화되면서 노동조합으로 조직적 단결을 하는 노동자들을 기업의 경영이념을 도입하여 유인하는 전략이다.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기업형 인간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김영삼 정권의 유연화 전략 도입을 위한 시도였다.

(2) 97년 무리하게 정리해고법과 변형근로시간제 노동유연화 법제화를 국회날치기로 통과시킨다. 이에 항의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으로 정리해고 등 유연화 전략을 막아냈으며 세계의 노동자를 또 한번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3)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전략 추진 결과 외환위기 도래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경제는 94년부터 96년 사이에 총외채가 520억 달러에서 1080달러로 두 배로 늘어나게 했다. (97년 말의 외채가 무려 3.5배로 증가) 특히 종금사들은 외채를 금리 차를 노리고 동남아에 투자했다가 동남아 위기가 터지자 연쇄작용에 의해 외환위기를 수입하게 된다. 94년 세계은행 총회에서 “한국과 태국이 국제자본흐름에 대한 장벽을 너무 빨리 제거하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어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는 경고는 정확히 적중,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이 부채는 결국 한국사회의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었다.

4) 97년 말 경제위기에 집권한 김대중 정권에 의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적극 추진된다.

(1)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해서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4대(기업, 공공, 금융, 노동)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김대중정권과 자본은 IMF 구제금융이란 경제위기 상황을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의 편입시키는 자발적 구조조정(금융공적자금 조기 투여, 퇴출, 금융지주회사, 공기업의 민영화 및 매각, 재벌기업 해외 매각)을 통해 돌파하려 했다.

(2) 김대중 정부는 소유-경영의 개혁이라는 기업 구조조정과 독점화, 대형화를 추구하는 금융구조조정을 주요 축으로 하여 국적을 불문한 자본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하였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금융,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함에 있어 매각가치가 높은 공기업을 사유화함으로서 공기업 노동자와 민중에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비용을 전가하였다.

(3)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과정은 한편으로 1998년 외환 위기를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제 통화 기금의 신자유주의적 대출 조건을 전폭적으로 수행함으로서 한국자본주의 체제를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 하에 종속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종속적 자본축적 구조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통해 1987년 이후 강고하게 조직화되었던 한국 노동운동 세력을 해체시키고 개별적인 노동자의 노동착취를 고도화하는 과정이었다.

5) 노무현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동북아 비지니스 중심국가’라는 경제정책으로 계승하고 적극적인 WTO체제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 유럽의 초국적 자본에서 중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써 한국을 송두리째 내주는 것이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란 다름 아니라 초국적 자본운동의 동북아 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적극적인 초국적 자본을 유인하려면 불가피하게 완전개방을 해야 하며, 자본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각종 특혜와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2003년에 경제자유구역법을 입법하고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하려는 것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계획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경쟁력 강화(노태우) ⇒ 세계화(OECD가입), 정리해고법 도입(김영삼) ⇒시장경제의 중시, 구조조정 추진(김대중) ⇒ 기업하기 좋은 나라(노무현)

한국은 이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국가가 되었다.

 

5. 신자유주의 구체 내용

개방화(세계화), 규제완화, 공공부문의 시장화, 노동의 유연화를 핵심내용으로

 

1) 신자유주의 핵심내용

세계화(개방화)

전세계 시장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WTO, 무역협정

규제완화

기업활동을 억제하는 규제를 풀어서 자유롭게

경제자유구역법

공공부문의 시장화

공공부문 돈벌이가 가능한 시장으로 자유롭게

공기업사유화,

교육, 의료 시장화

노동의 유연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더 자유롭게

임금, 고용 공격

 

2) 신자유주의 구체 내용

신자유주의 특징

구체 진행 내용

세계화(개방화)

자본의 자유이동을 위한 시장 개방, 세계화

상품(재화)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지적서비스 등

⇒ WTO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지배 강화됨.

국가간에 FTA(무역협정), BIT(투자협정)를 우선 진행 중

규제완화

(자본가에게 각종규제 철폐)

각종 법인세금 감면

시장(투자), 조세, 환경, 노동 규제 완화 ⇒ 경제자유구역

사회보장제도 축소

세금감면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공격 ⇒ 시장화

공공부문의 시장화

공기업 매각 ⇒ 기간산업의 사적소유

교육, 의료 등 공공부문의 시장화

노동의 유연화

(현장통제)

고용 유연화

정리해고 자유롭게 ⇒ 파견근로제 도입(비정규직 확대)

임금 유연화

성과주의적(성과급) 임금체계 도입 ⇒ 연봉제 도입

팀제를 통한 신인사관리제도(인사고과)로 확산

시간 유연화

탄력(변형)시간제 도입

업무 유연화

(작업장유연화)

1) 다기능화와 팀제(공공서비스, 사무전문직)

2) 린 생산체계로 공정통폐합과 팀제 전환(제조업)

⇒ 작업장 배치전환 일상화

3) 노동통제 강화(ERP:전사적관리시스템, CCTV)

4) 품질관리운동(품질실명제)

5) 제안제도, 각종 상벌제도(마일리지) ⇒ 인사고가 반영

6) 작업외적 현장통제 강화(친절운동, 체조)

일방적 노사관계 구축

(노동3권 공격)

노동3권에 대한 공격 ⇒ 단체행동권 제약

일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사정 협의기구 활용

기업문화 확산

(신노사문화)

기업교육, 사원 워크샵 활성화 → 기업형 인간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출세주의, 능력주의, 프로의식 확산)

각종 소모임 지원 및 활성화

인사제도와 연결하는 신인사노무관리로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