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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를 배우려면

한국수화의 역사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8. 6. 2.

 

** 한국수화의 역사 **

 

한국수화는 일제시대 이전에 농아인들의 수화사용에 대해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가 현 서울선희학교 전신인 제생원에 등록하여 농교육을 받 은 농학생들로부터 수화가 정리되고 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수화의 역사는 농교육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 세기 중순 무렵 유럽에서 일기 시작한 구화교육의 폭발적인 붐이 일본과 한국에도 미쳐서 건청인이 대부분인 농학교 교사들의 수화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약화시키는데 일조한 탓에 수화는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구화법을 통해서 농아인을 일반인으로 기능하려는 피눈물나는 노력이 결국은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동으로 수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고 하겠다.

 

한국 수화(Korean Sign Language)의 성립

 

한국 수화가 언제 어디서부터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길 없지만, 누만(Neumann0이 기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청각장애인이 한 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부터 수화가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의 편리한 수단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면, 수화는 미셸 드 레페(Michel de lepee)에 의해 최초의 청각장애학교가 세워진 200여 년 전부터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수화의 중국 수화 유입설은 외국인(미국인)에 의해 설립된 청각장애 교육기관간의 상호교류(교육방법의 연수)를 계기로 이루어 졌다고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은 중국 청각장애 교육기관(계음학교)에서는 실제로 수화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1회 동양 맹아교육기회의(평양맹아학교, 1914)개최 이전에는 수화이용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실제로 수화가 이용되었다고 하는 증거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 수화는 그 고유성(전통성)에서 한국 수화와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한국 청각장애아 교육 입문기에 중국 수화의 유입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수화는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setta Sherwood Hall)여사에 의해 청각장애아 교육이 처음으로 시작된 1909년부터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홀 여사가 청각장애아 교육에서 어떤 수화를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학교교육에서 자주 사용되는 여러 용어 중에서'공부' '배우다' '가르치다' '친구' '놀다' 등에서 미국 수화(ASL)와 비슷한 한국 수화(KSL)는 없는 것으로 보아 홀 여사는 미국 수화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1913년 조선총독부 산하의 제생원(濟生院, 현 국립 서울선희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한 5년제 청각장애아 교육에서 일본 수화(JSL)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수화에 관한 최초의 문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수화는 일본 수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한국 수화가 일본 수화에 의해 생성된 것은 아니다. 청각장애아 교육기관의 설립과는 관계없이 청각장애인은 존재하였을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그들과의 의사소통양식으로서 수화가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각장애인들이 집단(그들만의 소수집단)을 이루지 않고서는 수화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가 있으나 한 사람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건청인들이 수화를 이용한 예(폴리네시아 섬의 사례, 1979)나 소수의 청각장애인을 위해 마을(말타의 빈야드 섬)사람들 모두가 수화를 잉요한 예로 보건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 수화는 한국 청각장애인들과 그들 주변의 건청인들이 살아오는 과정에 자연적으로 생성 발달된 독자적이면서 우수한 언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인 Rossetta Sherwood Hall 여사가 신혼여행차 중국 체후에 체류 중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농아학교를 시찰, 농교육에 관심을 두면서 귀국후 이익 민씨를 파견. 1909년 최초로 평양 맹아학교에 농아부를 부설함으로 한국 최초로 농아교육을 실시, 수화는 자연히 중국식 수화를 도입했다.

 

나. 그 후 1913년 현 선희학교의 전시인 제생원이란 복지 및 교육시설을 둠으로써 제도화된 학교교육을 실시, 일제하에 일본식 수화 도입

 

다. 1947년 국립맹아학교 초대교장 윤백원 선생에 의하여 한글 지문자를 창안함으로써 한글 지문자의 효시가 됨.

 

라. 1979년 금옥 재단의 후원과 서울 농아학교(현 서울 선희학교) 교직원을 중심으로 한국 수화의 정비 착후 3년 후인 1982년에 약 5,700여 단어(수화)가 수록된 "표준 수화사전"이 창간됨으로써 수화보급에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 또 문교부 후원으로 각 시·도 농아학교(청각장애교사 6명, 일반교사 6명)와 한국 청각장애자복지회(청각장애인 1명, 일반인 1명)를 중심으로 배우기 쉽게. 알기 쉽게 만든 수화의 길잡이인 수화 교본을 발간, 현재 약 7∼10종의 수화 서적이 발행되고 있음.

 

-2002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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