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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노동자의 눈

무기한 '총파업' 선언한 날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9. 5. 22.

 

 

 타이어로 쌓아 놓은 '승리의 탑'과 붉은 깃발들!!

 

 

 

70m 굴뚝 '고공농성' 10일째를 맞이하면서 무기한 전면 총파업으로 확대되었다!!!

 

 

 

 

 쌍용차 건물 곳곳에 걸린 다양한 노동조합 플랭카드들!!!

 

 

 

 

쌍용차 본관 뒤 '단결의 광장'에서 오후 3시부터 열린 총력집중 금속노조 결의대회

 

  

   

 

어두워진 천막농성장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잡담도 나누고...토론도 하고...

 

 

명단은 없다!

 

애초부터 명단은 없었다. 아니, 설사 있었다 한들 회사는 이제 명단을 완전히 새로 작성해야 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명단이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명단은 ‘작성중’에 있는 상태일 뿐 완료되지 않았다. 희망퇴직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야 사측은 명단 작성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제부터 그 설명을 해보자.

 

(1) 1차 희망퇴직의 목표치 880명이라는 수치 = 전체 구조조정 대상 2,646명의 1/3

삼일회계법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쌍용차 자본 측은 2,646명의 구조조정 대상 중 880명은 희망퇴직, 1,766명은 정리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880명이라는 수치는 전체 2,646명을 단순히 3으로 나눈 수치에 불과하다. (2,646 ÷ 3 = 882)

 

이러한 단순한 셈법은 현장에서 관리자들에게 일정한 목표치를 채울 것을 할당하도록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어느 부서에서 대략 300명의 인원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 중에 1/3인 100명 가량을 희망퇴직 받으라고 할당하는 것이다.

 

1차 희망퇴직 기간 동안 이런 사례들이 많이 보고되었다. 근속도 오래 안되었고 기술도 있으며 착실하다는 평을 받은 노동자들, 즉 회사가 절대로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들 중 일부도 희망퇴직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장 관리자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희망퇴직을 종용하는 과정을 상정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관리자들은 일정하게 자신의 판단과 기준을 세워 명단을 작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회사의 정리해고 명단과는 거리가 먼, 개별 관리자들이 자의적으로 만든 명단일 뿐이다. 법적인 기준과 공정한 대상자 선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측은 1차 희망퇴직 기한을 연장하면서까지 목표치인 1/3, 즉 880명을 채웠다. 그러나 이는 정리해고 명단에 입각한 희망퇴직 종용이 아니라, 하급 관리자들의 충성 경쟁에 입각한 할당량 채우기 수준에서 벌어진 일이다. 백보 천보 양보해서 만약에 명단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그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매우 우수한 노동자들까지 상당수 희망퇴직으로 나가고 말았기 때문에, 이제 정리해고 명단은 완전히 새로 작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적어도 현시점에서 정리해고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간단한 이유 때문에, “정리해고 명단이 있다”는 소문은 많지만 정작 명단을 봤다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명단이란 것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 과거 사례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당시 사측은 7월 16일(목) 저녁부터 공식적으로 관리자들을 통해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정리해고 통보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공식 발표 이전에 사측은 7월 10일(금), 11일(토) 승용1공장 의장부, 4공장, 2공장 차체부 등 일부 현장에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을 기습적으로 발표했고, 이에 대항해 승용1공장 의장부 야간조 생산라인의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명단은 16일부터 실제로 통보된 명단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즉, 당시에도 현대차 사측은 가짜 명단을 갖고 현장에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사례에서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지점은, 사측이 명단 통보에서 주말과 휴일을 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기습적인 명단 발표가 10일(금), 11일(토)에 진행되었으며, 실제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하기 시작한 7월 16일(목) 저녁은 17일(제헌절), 18일(노는 토요일), 19일(일요일)로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즉, 주말과 휴일처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기 힘든 시점을 선택했던 것이다.

 

(2) 정리해고에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과 대상자 선정’이 필수 요건으로 되어 있다.

리해고 절차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정리해고의 요건을 아래와 같이 4가지로 명시하고 있다.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② 해고 회피 노력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과 대상자 선정 ④ 노조 또는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

만약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없다면, 정리해고자들이 나중에 해고무효소송을 진행할 경우 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사측도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아니, 사측이 고용한 변호사와 법률가들은 아주 빠삭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사측이 명단을 작성한다면 법원에서 패소하지 않을 정도로 분명한 기준을 세워서 작성할 것이고, 명단을 통보할 때에도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를 명시할 것이다. 그러나 “명단이 있다”며 희망퇴직을 꼬드기는 관리자들은 아무런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장에서 발견된 명단의 실체 중 하나는, 어느 관리자가 직접 볼펜으로 몇 명의 이름을 긁적여 놓은 종이쪼가리였다. 이게 무슨 정리해고 명단인가? 아무런 기준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말이다. 이건 법원으로 가면 무조건 깨지게 되어 있는 사례이다. 따라서 이것은 정리해고 명단이 아니라, 관리자들이 자의적으로 작성한 가짜 명단, 엉터리 명단일 뿐이다.

 

진짜 명단은, 희망퇴직으로 일정한 목표량을 채운 후에야 작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전체 정리해야 할 인원 2,646명에서 희망퇴직으로 나간 숫자를 제외한 부족인원에 대해서 새롭게 작성할 것이다. 이 인원은 제발로 나가기를 거부한 노동자들, 즉 반드시 해고무효소송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 노동자들이기에, 회사 입장에서도 확실한 근거와 기준을 세워서 작성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명단은 없다!”

 

(3) 회사 말을 듣는 것이야말로 정리해고 1순위가 될 것!

사측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장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몇몇에게는 “당신은 명단에 들어있다”고 하면서 희망퇴직을 종용하고,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는 “당신은 안전하니 노동조합 지침에 따르지 말라”고 꼬드긴다. 그러나 회사 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정리해고 1순위가 되고 말 것이다.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당시에도 명단은 절반은 순종적인 노동자, 절반은 민주파 활동가들이었다. 즉, 구조조정의 일정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회사 말을 고분고분 듣는 이들로 절반을 채운 것이다. 결국 그들 중 일부는 포기하고 나갔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믿고 끝까지 싸운 이들은, 일정 기간 무급휴직·정리해고 기간을 거쳐 복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희망퇴직으로 나간 이들은 결코 돌아올 수 없었다.

 

즉, 지금 회사 말을 믿고 노조의 파업 지침에 따르지 않는다 해도 정리해고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회사는 일정 숫자를 채우기 위해 또다시 순종적인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명단에 상당수 포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길은 노동조합 지침을 믿고 싸우는 길 뿐이다.

 

☞ 만에 하나, 정말로 만에 하나, 정리해고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해고가 억울해서 정문 앞에서 투쟁을 지속할 경우를 상정해보자. 어차피 쌍용차는 청산이 아니라 회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생산물량이 늘어나서 새로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회사는 정리해고된 사람들이 복직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 살아남은 조합원들은 무엇을 원하겠는가? 당연히 항상 자신들의 눈 앞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을 최우선으로 복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가 현장 노동자들 여론을 무시하고 신규채용을 강행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정리해고된 사람들의 복직 여부를 놓고 노동자들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의 여러 방침들이 현장에 제대로 관철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4) 관리자들, 잘 판단하라! 당신들이야말로 토사구팽 대상이 될 것!

지금이야 회사가 관리자들을 사냥개처럼 써먹을 효용가치가 있어서 가만 두는 것이지, 만약에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된다면 관리자들 가만둘성 싶은가? 전체적으로 생산직 노동자들의 숫자가 줄어드는데 관리자들 숫자를 이대로 유지할 것 같은가?

 

옛말에 토사구팽[兎死狗烹], 즉“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회사측은 냉혈한이나 다름없다. 동료들을 배반한 이들이야말로 회사를 다시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회사에 가장 충성했던 관리자들이야말로 구조조정 국면이 끝나면 정리대상 1순위가 되고 말 것이다.

 

1998년 현대차에서 7월 16일부터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하러 다니던 관리자들은, 분노한 조합원들로부터 몰매를 맞아야 했다. 그래서 회사와 관리자들은 일정 시점이 지난 후 명단 통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위기의식을 느낀 관리자들은 가족들까지 울산 바깥으로 피신시키기에 이른다.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노동자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관리자들, 당신들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당신들 같으면 해고 통보받고 가만히 있겠는가?

 

그리고 설사 구조조정이 성공리에 끝난다한들, 당신들이 행한 배신적 행각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은 노동자들로부터 불신대상 1호가 된다. 회사 생활 앞으로 아주 고달파진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제대로 판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