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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사의 길

농인 결혼식...행복하게 잘 사세요!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10. 6. 13.

 

 

수원종합운동장 옆 '웨딩의 전당'에서 젊은 농인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농인의 결혼식에 '수화통역'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수화세계에서는 다 아는 상식입니다...

 

농인 결혼식에 수화통역을 하러 다닌지 벌써 20년이 되었고...횟수도 꽤 많았지만...오늘처럼 수화통역사로서 대접(?)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신부의 어머님을 비롯하여 양가의 어르신들이 찾아와서 먼저 인사를 받기도 했고... 수화통역비도 받았습니다...

 

대부분은 신랑,신부와 친분이 있어서 직접 수화통역 의뢰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오늘은 신부의 선배(저와 아는 사이)를 통해서 의뢰를 받았습니다...

 

30분전에 예식장에 도착하였고, 처음보는 신랑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신랑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예식장 안내원들에게 소개를 직접 시켜주더군요!~~ 역시 안내원들도 신랑,신부와 의사소통이 안되던 참에 반가운 모양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예식 식순을 신랑에게 설명하였고, 카메라 기사님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카메라 기사님도 신부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웃으세요!" "미소를 지어 보세요!" 등등 간단한 수화동작을 묻고 확인하더니 금방 사용하더군요!~~^^

 

신랑,신부는 농인이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청인이었고, 신랑,신부의 친구분들은 대부분이 농인이었습니다... 

예식 식순에 따라 모든 절차가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에 들어갔습니다...마지막으로 신랑,신부 친구들의 순서가 다가오자...여기저기서 젊은 친구분들이 나타나더니 예식장을 가득 메웠습니다...예식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오늘처럼 농인 친구분들이 많았던 적은 처음입니다...

 

신부는 폐백까지 수화통역 서비스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당연히 폐백실로 따라갔고...집안 어른들께 술을 따르고, 절을 한 뒤 덕담을 건내주는 시간...

 

어른신들이 말씀을 못하시고 머뭇거립니다...수화통역사가 옆에 있는데도 말씀을 못하시고 대신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감격스럽기도 하고, 안탑깝기도 하고...여러 감정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수화통역사가 대신 감정을 전달했습니다...

"신랑,신부는 앞으로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사세요"... "싸우지말고 지혜롭게 사세요!"

 

 

오후 1시에 시작한 예식이 폐백까지 마치고 피로연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문자 한통이 날라왔습니다...

"지금 어디세요? 난수원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번 직접만나봐요 답"

 

평소에 알고 지내던 농인에게 문자가 날라온 것입니다....사전에 약속도 없이 갑자기 수원역으로 나오라고...ㅠㅠ

피곤하여 쉬고 싶었지만 쉽게 거절할 수 없는 것이 수화통역사의 삶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