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질신문 하는데 수화통역이 필요하여 중부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사건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농인이 수원 연무동의 어느 주택가에 승합차를 주차시켜놓고 친구분을 만나 의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르는 전화가 와서 (주차된 차량을 빼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차를 뺄려고 달려갔는데 청인이 발로 차량을 걷어차며 화를 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청인은 술을 마시고 집에 귀가하는 중에 문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때문에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차량에 부착되어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바로 끊어지고 다시 전화를 했더니 다시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청인은 몹시 화가나서 만나자마자 욕을 하는 등 화를 냈다고 합니다.
청인의 진술과 농인의 진술이 가장 다른 점은 농인의 차량을 청인이 발로 걷어차서 파손했느냐? 였습니다.
농인은 분명히 청인이 발로 걷어차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고, 청인은 반대로 걷어 찬 적이 없다거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1차 진술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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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포기하고 2차 대질신문에 응하게 되면서 농인은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어이가 없어 용서할 수 없다며 흥분해 있었습니다.
청인은 당일 술에 좀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평소의 행실을 볼때 술이 취했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다면서 농인의 주장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농인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로 인해 나이 어린 청인에게 무시를 당했다며 숨이 거칠어지고 호흡이 빨라지는 등 더욱 흥분했습니다.
청인은 농인을 무시한 적이 없다면서도 심한 욕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일마다 안되어 그동안 돈도 모으지 못했고 자식도 아동보호센터에 맡기고 겨우겨우 살고 있다면서 당일도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에 취해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이라며 재차 사과를 하였습니다. 농인은 그런 사과를 받고 싶어 고소를 한 것이 아니고, 청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다면서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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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진술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데...경찰이 양쪽을 설득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청인에게는 15년 이상의 수사경험상 농인의 진술은 1차때부터 지금까지 거짓이 없어보인다면서 청인이 술이 취해 이성을 잃고 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할게 아니라 오히려 깊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편이 처벌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요.
농인에게는 청인이 당일 술이 많이 취해 무례한 행동과 비이성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므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합의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입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와 똑같다며 청인이 용서를 구하면 받아드리면서 합의를 해 주는 것이 어떠냐고 추가로 덧붙이더군요.
구체적인 합의는 당사자들끼리 하는 것이기에 경찰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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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에 청인은 농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차량의 수리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하면서 용서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농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리비용이 28만원이지만 젊은 사람이 힘들게 사는 것 같다며 수리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면서 앞으로는 농인 등 장애인에게 무시하거나 무례한 행동은 삼가해 달라면서 합의를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청인은 다시한번 눈물를 흘리면서 사과를 했고, 농인은 "자식을 키우면서 힘들게 사는 것은 장애인들이 더 힘들다며 용기잃지 말고 열심히 살으라"고 당부하며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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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이 오해 또는 실수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2번이나 전화를 걸었음에도 전화를 받았다가 그냥 끊었다는 것인데... 농인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수화를 모르는 청인과 소통할때는 문자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죠. 즉 상대방이 농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입니다...ㅠㅠ
둘째는 상대방이 듣지 못하는 농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등 개(?)무시를 했다는 것입니다...농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고,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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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튼 대질신문은 잘 마무리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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