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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전망IN

열사정신은 '연대와 나눔'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5. 11. 16.
노동자대회를 통해서 바라본 전태일 열사정신
2005.11.15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하고 산화해 가신지 35년이 되는 날이다. 해마다 민주노총은 이날을 즈음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른다.

 

전국에 있는 많은 노조와 조합원 그리고 노동관련 단체회원들이 한 곳에 모여 열사의 뜻을 기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으로부터 활동의 자세와 방향과 사업을 모색하고 결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언제 적부터인지, 노동자대회가 동원에 주력하고 형식 채우기에 급급한 이벤트성 행사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노동운동의 현재는 어디에 있나


전야제는 새벽까지 술판으로 흥청거리기 일쑤이고 행사 당일에는 전날 술 때문인지 아니면 명망가들의 끝없는 그러나 너무나 뻔한 연설 때문인지 진지하게 듣거나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지방대오는 해질 무렵이면 행사 도중이라도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버리고 남은 대오는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수차례에 걸쳐 계속되는 연설과 결의로 힘을 얻는 동지는 소수일 뿐이고, 오히려 다수의 피곤함만이 남는다. 노조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조합원이 노동자대회에 참석하고 난 이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사례는 이제 옛 추억에 불과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성과의 척도는 얼마나 많이 모였느냐 하는 것이 절대적기준이다. 평가는 싸웠느냐, 싸우지 않았느냐, 아니면 어떤 게 적절한 것이었느냐의 편협하고 저급한수준의 지루한 공방을 항상 넘지 못한다.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열사정신 계승하자”라는 구호는 그대로이고 또 끊이지 않고 있지만 열사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번 노동자대회에서도 어김없이 빠져있거나 겉돈다.

 

언젠가, 오랜 기간의 활동으로 수차례의 구속을 겪기도 했던 한 간부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00산별노조가 전태일 정신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평가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따질만한 일도 아니고, 충분히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정말이지 가관이라 한방에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 “한다면 한다는 정신이야 말로 전태일 정신이다”는 것이다. 00산별노조의 실천력이야 타 조직과 비교해 월등하게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태일 정신이 “한다면 한다는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처럼 모두가 전태일 정신을 내세우고 계승하겠다고 하지만 해석부터가 제각각이고, 따라서 행동양식은 천차만별로 이어져 전혀 모아지지가 않는다. 물론 열사의 삶을 통해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실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위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간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면서 왜곡하거나 축소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열사정신을 제대로 이해해 우리의 좌표로 삼아야 위기에 처한 노조운동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대충 넘길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기초한 평등과 나눔의 정신이다. 봉제공장에서 어린 미싱공들을 보며 가슴 아파 하며 배고픈 이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청계천에서 도봉산까지 걸어갔던 일, 이들을 대신해 청소와 잡일을 해주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법을 공부하고 진정을 했던 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음에도 더 이상 바뀌지 않자 스스로 몸을 불살랐던 일도 이런 정신에 근거한 것이다.


노동운동의 나눔 정신을 찾아서 … 스스로 되돌아 봐야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의 노조운동이 인간에 대한 사랑, 평등과 나눔의 정신을 잇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최근 비리문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노력은 다하지 않고 정부에게 내팽개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일 전태일 열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지 않고 꽉 움켜쥔 채 분신을 했다면, 오늘 날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와는 비교할 수 없다. 최근, 노동운동이 진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다.

 

울산 북구의 보궐선거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다수 비정규직들이 선거결과에 대해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외려 잘돼버렸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단순하게 개인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다. 정규직과 정규직노조에 대한 평가이다.

 

정규직노조가 나눔과 연대는커녕 제 밥그릇만 챙기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는 게 비정규직이나 주변 약자들의 시각임을 감안하면, 노동자후보라고해서 특별히 지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역지사지로 내가 비정규직이었어도 코웃음을 쳤을 일이다.

 

우리노조운동은 지금 나눔의 정신이 부족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국제노동단체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노조의 위치는 작은 것일지라도 도움을 줘야하는 입장으로 바뀌어 있다. 실제 3세계 노조들은 우리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내물량감소 시 해외공장을 축소한다.”고 합의하는 것으로 고용을 보장받으려하거나, 노사가 함께 해외공장을 방문하는 일은 수시로 있지만, 노조가 해외공장이 위치한 곳의 노조를 만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번 노동자대회와 전야제에서의 가장 큰 아쉬움도 나눔의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기업노조는 천막도 훌륭하고 음식도 준비가 되었다. 이동수단도 버스를 대여했다.

 

그러나 함께 나누는 것에는 인색했다.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고민과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과 비교하면 년 100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사회 내에서 대기업노동자는 이미 중산층반열에 올라있다.

 

그런데도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 탓만 하며 여전히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만 되 내이고 있다. 정규직과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꿈인 비정규직과 영세노동자들에게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왜 노조가 이기주의 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인지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 노조운동이 지지를 받았던 것은 가능성보다는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사회구조를 바꾸겠다는 방향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념을 바꾸라는 게 아니다. 제 것은 현실에 근거해 챙기면서 남의 것은 구조를 바꿔서 챙겨주겠다고 하는 논리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눔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바보이거나 진짜 이기주의자이다. 나눔이 있어야 신뢰와 연대도 생기고 사회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에도 귀 기울이게 될 것이며 현실화 될 수 있다. 지금부터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나누자. 이것이 전태일 열사정신을 올곧게 계승하고 작금의 노조운동을 구하는 시발점이다.



 
박 병 규 [ 나눔을 실천하는 노동연대(준) 집행위원장/전 금속연맹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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