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만의 자료실

노동자의 '임금이란?

by 수어통역사 박정근 2006. 9. 30.
['임금문제' 토론을 위한 아홉 가지 질문]

1. 임금이란 보통 무엇이라고 이야기되는가?
- 자본가들은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고 이야기한다. 근로기준법 18조에서는 임금을 “사용자가 근로의 대상으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기타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면, 그것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을 판매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을 판매하려면, 노동자는 “노동” 자체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 그런데 노동이 이루어지려면 공장, 기계, 원료 등 생산수단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없다면 노동자는 맨손체조밖에 할 수 없다. 생산수단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다. 즉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직접 작업에 투입되기 전에는 노동을 할 수도 없다. 이처럼 노동자가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자본가에게 판매할 수는 없다.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진실은 다른데 있다.

2. 임금의 본질은 무엇인가?
- 그렇다면 임금은 무엇의 대가인가? 노동자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된다. 몸뚱아리. 그러나 몸뚱아리 자체를 팔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대노예일 것이다. 노동자는 노동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 즉, 노동력을 판매한다. 노동력 판매의 대가로 받는 것이 임금이다.

- 자본가들은 노동력의 대가만큼 임금을 지불하고,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노동을 시킨다. 즉 노동자들의 노동의 일부는 임금으로 지불되지만, 나머지 일부는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다. 이 부분은 자본가가 공짜로 뜯어간다. 이것이 이윤의 원천이다.

- 임금에 관한 자본가들의 정의는 임금의 본질을 은폐한다. 즉 노동자들에게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뜯어가는 노동까지도 지불노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착취의 비밀을 가린다. 반면 임금에 관한 우리의 정의는 착취의 비밀을 폭로한다. 임금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임금노동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3. 시간급, 성과급 등 지불형태 차이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임금지불은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다. 형태가 어떻더라도, 노동자들에 대한 갈취를 은폐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어떤 임금형태를 취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주지는 못한다.

- 그러나 특정한 임금형태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도를 더 강화하기는 한다. 가령 성과급제, 연봉제 등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게 한다. 경쟁이 강화된다. 그 결과 개별임금은 인상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균임금이 하락한다.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 따라서 눈앞의 이득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전진을 위한 방향으로 임금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묶는 덫이 된다.

4.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와 “최저생계비 대폭인상 요구”는 왜 정당한가?
- 동일노동에 대한 차별임금, 정규직 비정규직 분할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분쇄하고 투쟁력을 마비시킴으로써 자본의 공격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반박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비정규직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그 손실분 역시 자본가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 최저생계비 대폭 인상을 위한 투쟁에 관하여. 자본주의의 기본경향은 임금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절대적인 수치 즉 명목임금에서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조직된 투쟁력에 달려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상대적인 수치 즉 실질임금에서는 임금하락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물가 즉 노동자들의 생활비용이 항상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저생계비 대폭 인상을 포함하여 모든 임금인상투쟁은 사실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수준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대공장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받아오기는 했지만, 그것도 뼛골 빠지는 잔업 철야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노무현정부는 “대공장노조의 집단이기주의” 운운하며 대공장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5.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왜 더 형편없는 임금만을 받는가?
- 왜 원청-하청 구조가 생겨나는가? 자본가들의 기본생리로부터 분석해보자. 그들의 기업활동의 목적은 이윤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윤을 창출하고 확대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는 타도의 대상이며, 이윤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요소는 쟁취의 대상이다. 이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 대공장노동자들의 투쟁의 과정이 있었다. 투쟁의 결과 대공장노동자들은 일정하게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갈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자본가들은 손해본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이 손실을 어떤 식으로든 메꾸고 싶어했다. 자기 사업장에서 투쟁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자본가들은 갈등과 대립의 요소를 외부로 빼돌렸다. 즉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강화로 방향을 잡았다.

- 대공장자본가는 하청자본가들에 대한 줄세우기를 시작한다. 하청자본가들끼리 납품단가 인하경쟁을 벌이게 한다. 규모가 안되는 하청협력업체들은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단가를 낮추며 물량을 따내려 애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하청자본가의 손실로 연결되는가? 아니다. 이들은 그 손실을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무지막지한 임금삭감이 이루어진다. 가장 형편없는 노동조건이 강요된다. 하청협력업체들에서의 노동조합은 사전에 봉쇄되거나, 건설되더라도 초전박살내려는 필사적인 기세로 덤벼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상당수의 부품업체 노동조합들은 이 압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무너지곤 했다.

-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극악한 착취 덕분에 대공장자본가들은 일정 정도 이윤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공장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쟁취할 수 있었다(물론 상대적일 뿐이다).

6.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투쟁과 원청 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 근자에는 이 패턴이 대공장 내부로까지 사내하청이라는 형태로 들어왔고, 더욱더 확대되고 있다. 자본가들이 노리는 것은 이런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저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하게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면 생계의 갈림길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입하여 공장을 가동하고, 그럼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파괴자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다. 즉 노동자들이 서로 분열하고 대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가장 극악한 사례가 캐리어의 경우였다.

- 모든 노동운동이 갈림길에 서 있다. 자본가들의 의도대로 분열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며 대립하는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들이 짜놓은 무대를 엎어버리고 전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 새로운 투쟁무대를 설치할 것인가! 중소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단결,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운동은 이제 더이상 생존을 도모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현자울산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노동자들과 단결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상황을 반영한다.

7. 임금인상투쟁, 무엇을 위한 것인가?
- 임금인상투쟁은 이처럼 나날이 열악해지고 불안정해지는 노동자들의 기본생활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임금수준을 올리기 위한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현상유지조차 못할 것이다. 더욱더 열악한 조건으로 굴러떨어지게 될 것이다.

- 그런데 과거의 수많은 투쟁들에서 볼 수 있었듯이, 임금인상투쟁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우리가 돈 몇 푼 때문에 이렇게 투쟁하는 줄 아는가!” 하며 자본가들을 규탄하기에 이른다. 이런 모습들은 노동자투쟁의 본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 여러가지 부분적 요구투쟁들이 있다.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 비정규직 철폐, 노동악법 철폐 등등. 이 모든 투쟁들의 바탕에는 노동자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며 인간 취급하지 않는 자본가들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다. 노동자의 머리 위에 걸터앉아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가들을 날려버리고 싶은 본능적 열망이 있는 것이다.

- 때문에 “돈문제”로 시작한 임금인상투쟁은 결국 “돈문제”가 아니게 된다. 돈문제로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본가들이 바라는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된 노동자들만큼 자본가들이 다루기 쉬운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타 사업장 사례 공유).

- 우리는 자본가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임금인상을 쟁취함으로써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방어할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의식, 단호한 투쟁정신, 투쟁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발돋움하는 노동자민주주의, 궁극적으로 자본가들의 지배질서를 날려버리고 노동자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노동해방 정신을 훈련하고 벼려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 즉 임금을 인상해서 좋은 차 한 대 뽑아야겠다, 외식 한 번 더해야겠다는 관점이 아니라, 좀더 충분하게 투쟁기금을 조성하고, 다양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데 활용하며, 필사적으로 싸워나가는 투쟁사업장들에 대한 적극적 지원금으로 기부하겠다는 관점에서 (즉 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데 복무한다는 관점에서) 임금인상투쟁을 한다면 그것만큼 노동자들을 의식적이고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 과연 그런 관점을 불어넣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선진적인 동지들이 얼마나 활력있고 적극적으로 동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가에 달려있다. 단숨에 큰 변화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은 대중을 변화시킨다. 바로 여기에 투쟁의 의의가 있다.

8. 임금인상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 조합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의 지불능력을 걱정한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앓는 소리를 하고 죽는 시늉을 하면 겁을 먹는다. 스스로 정당한 요구를 철회하고 투쟁의 수위를 낮춘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살 것 아닌가?” 하는 자본가의 주문에 걸린 채 길을 잃는다.

- 자본가들의 지불능력을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걱정할 일이다. 물론 한 기업의 자본가가 지불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개별 자본가들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전체 자본가들이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공장과 기계에 대한 소유권도, 작업에 대한 통제권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권도, 경제를 통치하는 국가권력도 노동자들에게는 없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데 무엇을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만약 자본가들이 그들 자신이 자초한 위기를 해소할 능력조차 없다면, 그런 자본가들은 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몇몇 자본가들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가사회 전체의 문제다.

- 결국 우리는 임금이라는 하나의 부분적 사안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누가 이 사회를 운영할 것이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질문을 회피하고서는 단 하나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가 우리 앞에 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 구호를 움켜쥐어야 한다.

- 이것은 우리 투쟁의 관점이 단사의 관점, 한 공장의 관점, 일개 라인의 관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관점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임금이 오르는 대가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여나간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임금인상투쟁일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 연대정신을 강화하는 임금인상투쟁이 아니라 “나의 안위”를 위한 임금인상투쟁을 한다면 “편협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무슨 재주로 피할 것인가?

- 그러므로 임금인상투쟁은 다른 투쟁들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자본가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시간문제, 노동강도문제, 정규직-비정규직문제, 노동법문제 등 모든 측면에서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공격의 한 부분인 임금문제만을 갖고 싸운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울산공장에서는 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쟁하기 시작했고,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도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만약 이 투쟁이 비정규직 쟁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모든 계급적 쟁점들을 함께 제기하고 싸워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은 기아노동자들에게도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만약 기아노동자들이 임금투쟁에서 계급적 관점을 내세우면서 가차없이 투쟁하고 승기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 동지들에게까지도 무한한 자신감과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힘을 북돋고, 서로를 전진시키며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 것, 이것이 모든 투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다.

9. 임금인상투쟁에서 선봉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관점과 입장의 명확함 즉, 자본으로부터의 분명한 독립성. 그리고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진정한 노동자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 위기에 처한 자본가들은 아주 작은 쟁점에 대해서조차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고 광분한다. 임금인상투쟁에서 대해서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할 것인데, 특히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 정신을 마비시키기 위해 치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할 것이다. 그런 공세에 휘말리지 않고 투쟁대열을 굳건히 사수하기 위해서는 임금투쟁에 관한 명확한 입장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 자본의 위기가 격화될 때,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노동조합은 오래지 않아 자본의 부속품이 되며,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관료화된다. 현장조합원들의 자발적 대중적 투쟁기구인 선봉대는 이와 같은 노동조합 관료화를 차단하고 생동감넘치는 민주노조를 수호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봉대 내부적으로도 노동자민주주의가 철저하게 관철되어야 한다.


<추가>
1. “임금의 본질”과 관련하여, 현재의 임금제도가 어떻게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2. 원하청 구조. 전체 노동자계급 내에서 임금분배비율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노무현의 “대공장 이기주의” 운운에 대한 대공장노동자들의 반발. 잔업철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말로 대공장노동자들은 고임금을 받고 있는가? 자본의 착취구조가 원하청노동자들을 어떻게 분할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폭로될 필요가 있다.
3. 그럴 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최저생계비 인상투쟁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 전반적으로, 정치적 훈련이 안된 층이 보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점.